에더게즈, 그것은 악령에 의해 오염된 나무의 정령이었다. 정령이나 악령도 되지 못하고 망령으로써 존재할 수밖에 없는 거인은 비통에 찬 거친 포효를 질렀다.

 

「날 보지 마! 날 직시하지 마! 이 몸을 살피지 마!」

 

  타락한 자신의 모습을 비애하며, 그런 자신을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이곳에 들어온 모든 존재를 죽이고 없애왔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는 이곳에 살아있는 존재에게 그 적의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타락한 나무의 망령은 자신의 검을 뽑아내었다. 거인의 손에서 새싹이 자라나 듯 뿜어져 나오는 수많은 나뭇가지 검들! 나무의 망령답게 하나같이 나무로 안 되어있는 게 없었지만, 가지고 있는 예기만큼은 그 어떠한 보검에도 견줄 수가 있었다.

 

“도, 도망치지 않으면!”

 

  차드는 최대한 속력을 내어 달렸다. 차드는 지금 저런 것을 상대할 배짱도 없고 여유도 없었다. 지금은 겨우 잠든 아리를 안전한 장소로 옮기는 게 가장 중요했다. 허나 에더게즈는 그런 그를 가만 놔두질 않았다. 

 

“~~~~~~!!”

 

  거인은 괴성을 질러대며 뛰어다니면서 나무 검을 쏘았다. 각각 손잡이에 줄기를 달아놓은 검들은 빠르게 차드가 도망가는 길을 앞질렀다.

  그 위협 이리저리 피하면서 차드는 난감한 표정을 띄웠다. 이 상황대로라면 아리를 안아들고 무사히 저 망령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번처럼 도움을 바랄 수는 없어. 이번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해!’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있는 아리를 힐끗 보며 차드는 각오를 굳혔다. 그리고 그대로 안고 있는 아리를 라네스에게 넘겼다. 바로 옆에 붙여있던 그녀는 그의 마음을 읽고 차드에게서 소녀를 받아 안아들었다.

  다시 검을 뽑자마자 차드는 곧장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차드는 낮은 자세로 파고들며 에더게즈의 다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까앙-!!

 

‘제길! 안 배어지잖아?!’

 

  칼은 허무하게 튕겨나갔다. 역시 세상일은 생각처럼 쉽게 되는 일이 없다니까. 나름대로 없는 용기까지 끌어내 폼 한번 잡아보았는데도, 차드는 기세를 꺾고 황급히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 뒤로 차드는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기에 바빴다.

  팔에서 나온 나무 검들이 하나같이 줄기를 달고 연달아 그에게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그것을 쳐내가 피하면서 차드는 에더게즈의 약한 부분을 찾으려고 애섰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게 있었으니. 에더게즈는 팔은 하나가 아니었다.

  다른 한쪽 손에서 똑같은 나무 검들이 튀어나온 것은 거의 한순간이었다. 그것들은 다른 한쪽 손과 똑같이 줄기들을 달고 차드를 위협하였다.

 

“으-악-! 제길-!!”

 

  차드는 악을 써가며 정확히 두 배 정도 많아진 칼들을 피해 다녀야 했다. 피해도 쳐내도 끝이 없는 목검들…. 얼마안가 차드는 칼날들을 전부 쳐내지 못하고, 그 중 상당수의 검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맞고 말았다. 그러나…. 끼기긱!!

  대기의 막이 차드를 보호하며 육신을 꿰뚫으려는 목검을 막았다. 차드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칼날들의 줄기를 잘라 떨어뜨리며 재빨리 녀석에게 달려갔다.

 

  그런 차드의 주위로 무수한 진공의 칼날들이 생겨나 다가오는 목검들을 막아섰다. 진공 칼날은 교묘하게 줄기들을 자르며 목검과 에더게즈의 연결점을 절단한 것이다. 그 칼날들의 엄호를 받으며 차드는 나아갔다.

  들고 있는 검에는 라네스의 의지. 모든 걸 둘로 가르는 의지를 칼날에 머금으며….

 

‘정령과 함께한다는 것이 이렇게 든든한 것일 줄이야!’

 

  이렇게 내심 감탄하며 에더게즈의 가슴팍에 뛰어들었을 때. 차드는 이 날카로운 의지를 머금은 검이 거인의 가슴을 꿰뚫을 거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에더게즈는 줄기가 잘려나가 빈손이 된 자신의 오른손을 나뭇잎이 가득한 자신의 등판에다 갖다놓는 것으로 차드의 자신감을 여지없이 꺾어버렸다.

 

쾅! “끄아아아악!”

 

  굉음과 함께 뒤로 튕겨나가는 차드. 라네스의 가호로 무사히 땅에 내려설 수 있었지만, 에더게즈를 보는 차드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 못했다. 에더게즈의 오른손에는 방금 전과는 비교가 안 되는 크기의 대검이 들려져있었다.

  망령은 터무니없이 거대한 그것을 휘두르며 차드에게 달려들었다. 거인주제에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빠른 속도로 달려들어, 에더게즈는 교묘하게 자신의 힘이 축적된 대검을 휘둘렀다. 단순한 마물로 보았던 에더게즈의 의외성에 차드는 못 피하고 막아야했다. 

 

“………!!”, ‘아시드-!!’

 

  또 다시 차드는 튕겨져 나갔다. 동시에 그의 손에 들린 볼테스에게서 받은 검이 산산조각 나며 파편이 땅에 떨어져 부스러졌다.

  이번에도 라네스의 도움으로 무사히 바닥에 착지하고, 차드는 황당하다는 듯 부러진 검을 살폈다. 나름대로 명품에 속하는 비싼 검이 아예 깨져버린 것이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에더게즈는 지체 없이 바로 달려들었다. 차드는 주 무기를 잃은 위기감을 맞볼 겨를도 없이, 제그라의 부츠로 도망 다녀야했다. 

 

“모오옷~! 움~~지이익~! 인~~다-!”, “!!!”

 

  단순한 배경에 불과하던 회색나무들이 어느새 차드의 주위를 빈틈없이 포위하였다. 그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정면으로 달려드는 에더게즈를 바라봤다.

 

‘이 숲의 나무를 아군으로!? 아시드! 이리 된 이상 정면으로 맞붙을 수밖에 없어요!’

‘농담이지? 저 덩치라고? 어떻게 내가 정면에서 저 녀석과 부딪칠 수 있냔 말이야?!’

‘걱정 마세요, 아시드.(에헴!) 당신의 양손에 제가 폭풍의 의지를 축적해드릴게요. 그걸로 한두 대정도 때리면 거뜬히 저 망령을 날려버릴 수 있을 거예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어려운 일을 ‘참 쉽죠?’하면서 지시하는 라네스를 보며, 차드는 어쩐지 한숨을 내쉬고 싶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어느새 차드의 손에는 아리의 ‘폭풍의 구슬’처럼 거친 바람이 모여들고 있었다.

 

‘한방. 한방이다. 한방에 녀석을 밀어낸 다음에 옆으로 빠지는 거다.’

 

  짧게 각오를 다지며 차드는 뛰쳐나가려고 했다. 정말 이번에야말로 어울리지도 않는 온갖 개폼을 다 잡으며 달려들려는 차드였다. 허나 이윽고 일어난 어떤 현상을 보고 그는 앞으로 쏘아지려는 것을 멈추고, 앞쪽으로 쏠린 몸을 수습하기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차차차차! 아이고 이게 뭔 추태야?! 그나저나 저건-!’

 

  처음에는 나뭇잎 하나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을 가지고 있는 그것은 크기만 봐도 비교가 안 되는 에더게즈의 몸에 착 달라붙었다.

  마치 그 품에 안기는 듯이 말이다. 그걸로 끝이었다면 차드가 멈출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만이 아니었다. 하나둘씩 모이는 나뭇잎들…. 눈에 띄는 과정을 거쳐서 순식간에 수를 늘려가던 잎들은 전부 망령에게 달라붙어 전진을 막았다!

 

“~~!~~~!~~~!!”

 

  에더게즈는 괴성을 질러대며 그것을 베려고 했다. 하지만 거인에 비해 미세하다고 할 수 있는 나뭇잎들은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단지 성가시게 할 뿐이었다. 차드는 그 갑작스러운 괴현상을 보고 있다가 황급히 주위를 살폈다. 

  진로를 방해하는 회색 나무들 중 한그루 위에 한 인영이 서서 조용히 에더게즈를 노려보고 있었다. 갈색 머리카락에 꽃과 나뭇잎으로 되어있는 장식을 달고 있는 소녀였다. 그녀는 그 부드러워 보이는 손을 들어 에더게즈를 향해 겨냥했다. 

 

  놀랍게도 그녀의 손에서 방금 전의 에더게즈처럼 한 자루의 검이 튀어나왔다. 부드러웠던 손이 순식간에 나무재질처럼 딱딱해지며 그것을 생성시킨 것이다. 나무의 여인은 제그라의 부츠를 보유한 차드 못지않은 속도로 나무의 망령에게 뛰어들었다.

  그녀의 검에서는 활짝 피어나듯 꽃잎과 함께 선명한 광체가 뿜어져 퍼졌다. 엄청난 무게감과 파괴력이 함께하며 그 칼날은 내려쳐졌다. 

 

“!!!!!”, ‘마, 막았다?!’

 

  나뭇잎들의 방해를 받으면서도 에더게즈는 아슬아슬하게 나무여인의 검을 막았다. 그리고 크게 포효했다. 에더게즈의 거대한 검에서도 검은 꽃잎이 피어나면서 전신 줄기들이 자라나 뻗어갔다. 그 덕분에 망령을 감싼 나뭇잎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떨어졌다.

 

“꺄아아아악!!”

 

  나뭇잎이 떨어지면서 이번에는 새하얀 나신을 커다란 나뭇잎으로 가린 소녀가 떨어졌다. 그러나 차드는 새로 등장한 나뭇잎소녀에게 눈길조차주지 않았다. 그는 이미 양손에 폭풍의 의지를 가득 담아 에더게즈에게 뛰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야 말로 받아랏!!”

 

  부츠의 효과로 인해 민첩해진 몸놀림으로 에더게즈의 줄기를 피하며, 차드는 거인의 팔 안으로 파고들어 복부에다 거친 바람으로 감싸진 왼쪽 주먹을 넣었다.

  의지는 순식간에 폭주하며 터져나갔다. 에더게즈는 비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주르륵 밀려났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무여인이 꽃이 피어난 목검을 들고 또 다시 달려들었다. 그 순간 검은 꽃잎과 분홍 꽃잎이 서로 어울려지며 춤추고 있는 장관이 펼쳐졌다.

 

“아름다워…. 장관이 따로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지?”

 

  자기도 모르게 의문형으로 말하며 차드는 감탄했다. 그 격렬함은 이전의 레가이와 니레의 싸움보다는 못하지만 시각적으로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물론 정신없이 보면서 나무여인과 격돌하고 있는 에더게즈에게서 빈틈을 찾아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를~~~괴롭~괴롭~~히지~!!!”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에더게즈는 순간 전신에 꽃을 피웠다. 갑작스런 에더게즈의 폭주. 그 반응은 너무나 기습적이라, 나무여인은 당당하게 달려들었을 때와는 달리 속절없이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정신을 차린 나뭇잎소녀가 다시 자신을 잎으로 화하여, 에더게즈의 공격을 막으면서 엄호하였지만 그래도 역부족이었다. 차드는 빈틈을 찾는 것을 그만두고 망설였다. 

 

‘이대로 아리를 데리고 도망가면 살 수 있을지도 몰라.’

 

  저돌적인 모습으로 커다란 꽃잎을 연신 사방에 쏘며 돌진하는 에더게즈를 보고, 차드는 오른손에 깃든 폭풍의 의지를 쓰는 것을 포기하였다.

  망설임은 짧았다. 현실적으로 생각하기로 한 차드는 그녀들에게 미안하지만, 지금 그들이 에더게즈를 붙잡고 있을 때 도망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뚫려라!!”

 

  차드는 자신의 생각을 다시 바꿔야했다. 왜냐면 에더게즈의 뒤에서 쏘아지는 강렬한 창염(蒼念)의 빛 때문이었다. 콰콱!!

  어디선가 들려온 짧은 외침과 함께 순식간에 에더게즈가 창염의 빛에 꿰뚫려졌다. 뒤에서 창염을 내는 창으로 나무망령을 꿰어버린 카더는 어떻게든 그것을 붙잡아두려고 했다. 그때 드디어 빈틈이 생긴 것이다. 차드가 그토록 찾으려고 헤매던 빈틈이!!

  망설일 필요도 없이 차드는 바로 달려들었다. 오른팔의 팔찌에 쪽! 소리 나도록 확실하게 입을 맞추고 짧은 검을 꺼내, 그는 오른손에 있는 라네스제 폭풍의 의지를 칼날로 옮겼다. 함께한지 얼마 안 됐음에도 라네스와 차드는 호흡이 잘 맞았다.

  차드는 또 다시 에더게즈의 품으로 잽싸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난폭한 성질이 깃든 검을 나무망령의 오른쪽 가슴에다 박아 넣었다.

 

「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그…! 그…! 그과콰콰콱!!

 

  소름끼치는 소음과 함께 에더게즈의 한쪽 가슴이 터졌다. 오른팔이 떨어져나가며 대검을 떨어트린 나무망령은 곧바로 달려드는 나무여인의 참격에 의해,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크으-!~가~~아아~~~아!!”

 

  통째로 떨어진 오른쪽에서부터 거인의 모습이 부스러져갔다. 결국 에더게즈는 두 쪽으로 쪼개지며 비통한 모습으로 서서히 소멸되어갔다. 가루가 돼가며 사라지는 그 쓸쓸한 모습을 보고 차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도, 이번에도 자신은 무사히 살아남았다.

 

“후우-! 라네스! 아리는?!”

 

  멀리 떨어져있던 라네스가 아리를 안아들고 차드의 옆으로 다가왔다. 정신없이 싸우는 사이에 자신뿐만 아니라 아리도 든든하게 지켜준 그녀를 보고 차드는 미소 지었다. 이 정령과 함께하지 못했다면 자신은 이 자리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차드는 같은 미소로 답하는 라네스에게서 아리를 받아들었다. 이런 소란 속에서도 아리는 곤히 잠들어있었다. 그렇게 차드가 겨우 한숨 돌리고 있을 때, 갑작스레 난입한 나무여인과 나뭇잎소녀가 다가왔다. 정령으로 보이는 그녀들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는 일단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나는 어째서 당신이 그 정령분과 함께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나는 덕분에 괴로워하는 동료에게 안식을 선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러므로 당신께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착각하고 답례를 말하는 것 같았다. 차드는 변명하기위해 말을 꺼내려다가 나뭇잎소녀가 다가오자 입을 다물었다. 겉모습은 아리 또래로 보이는 소녀는 살짝 뛰면서 차드의 목을 껴안고 볼에다 입을 맞췄다.

  덕분에 살짝 얼이 빠진 차드에게 소녀는 수줍은 미소를 지어주며, 부끄러워하며 재빨리 나무여인의 뒤로 숨었다. 라네스가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차드는 소녀의 입술이 닿은 볼에다 손을 가져가며 생각했다.

 

‘부드럽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달콤한 느낌…. 아니! 이게 아니지! 정신 차려, 나!’

 

  자신은 이런 감사받을 자격이 없었다. 그녀들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도움 받은 것은 오히려 이쪽이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상황이 불리해지자, 자신은 이 정령들을 미끼로 도망칠 생각까지 했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감사받으면 겸연쩍어서 괴롭단 말이야.’

‘융통성 없는 말 하지 마시고 그대로 가만있어요. 아시드는 자격 있어요.’

 

  라네스는 그런 차드를 막으며 이상한 말을 하였다. 그런 함께해주는 정령을 차드가 의아해하며 바라보고 있을 때, 이번에는 나무여인이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나는 보았습니다. 맹약자의 검이 타락한 나의 동료의 탓에 부러지는 것을…. 그래서 나는 말합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것을 사용하지 않겠습니까?”

 

  나무여인이 두 손으로 내민 것은 에더게즈가 마지막에 사용한 거대한 목검이었다. 들기는커녕 너무 굵어서 쥐는 것조차 불가능한 거대한 대검.

 

‘에더가이즈. 아시드가 가진 제그라의 영격이 봉인된 부츠와는 수준이 다른, 정령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영물이에요. 에더게즈의 이름과 특성을 물려받아 새까매졌지만.’

 

  설명과 함께 라네스는 직접 나무여인에게서 대검을 받았다. 그녀는 라네스의 손에 들린 에더가이즈를 한 손을 쓸었다. 그러자 거대한 검은 점점 크기가 줄어들더니, 물을 쏟아내며 차드가 들기에 적당한 크기로 변화하였다.

  얼떨결에 그것을 건네받은 차드는 에더가이즈를 자세히 살폈다. 나무 특유의 꺼칠꺼칠한 감촉이 느껴졌으나, 날 부분에는 어떤 명검과도 비교가 안 되는 예기가 느껴졌다.

  염치없는 짓이라며 스스로 자조하였지만, 차드는 그런 에더가이즈를 살피자마자 마음을 바꿔다. 좋은 무기는 꼭 필요하고 그런 중요성을 제쳐두더라도 이것은 탐이 났다. 흔쾌히 받아드리며 볼테스에게 받은 검과 한 쌍인 검집에 넣어두었다.

 

“나는 그러고 보니 지금에서야 눈치를 챕니다. 나는 은인의 이름을 모르는군요.”

“은인이라니 너무 과합니다. 오히려 도움 받은 건 이쪽인데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은인입니다. 그보다 자기소개를. 나의 이름은 아이즈. 이 아이는 스림. 인생에서 가장 격렬한 순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녀의 은인을 대하는 너무나 과한 태도에 부담을 느끼는 차드 대신, 라네스가 그녀들의 인사에 답례하였다.

 

“저는 라네스. 흐름을 관장하고 있는 정령입니다. 이 남자는 저와 함께하는 아시드레이에요. 저희들 역시 인생에서의 위기 중,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만나게 되어 반갑답니다.”

 

  차드는 한심하게도 뒤에서 공손하게 고개만 숙였다. 직접 말로 전해지는 것도 아닌데도 라네스가 좀 더 당당해지라며 타박하는 게 느껴졌다.

 

“이 검을 양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다못해 이 사례만은 하게 해주세요.”

 

  하지만 이것은 이거고, 미안하고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다. 차드는 그 뜻과 함께 확실히 말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런 차드를 보며 라네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고, 아이즈도 별말 없이 살며시 미소를 지어줬다.

  이렇게 서로 사례와 자기소개가 끝나고 난 후. 마지막으로 다가온 사람은 어느새 창염의 빛이 사라진 창을 어깨에 짊어진 카더였다. 나무여인 아이즈는 그가 자신들에게 도움을 준 또 다른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해내고, 그에게도 인사하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전에 카더가 갑자기 그녀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는 게 먼저였다. 그는 그녀가 말을 꺼내기 전에 등 뒤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내밀었다. 

 

“저, 저랑 결혼해주십시오!!”

 

  어떻게 보아도 꽃다발입니다.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라도 해줄까? 그전에 언제 준비해둔 건지, 도대체 어디다 숨기고 꺼내든 건지 몹시 묻고 싶구나!

  개인 취향적인 딴죽은 넘어가고. 카더의 그런 모습과 발언에 이번에도 그에게 다가가려던 나뭇잎소녀 스림이 허겁지겁 아이즈의 등 뒤로 숨었다. 얼굴이 파랗게 질린 걸 보니 겁먹은 것 같았다. 아이즈 또한 차드를 대할 때랑은 다른 떫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일단 묻습니다만, 그 결혼이라는 것은 함께하는 것을 말하는 겁니까?”

“물론! 함께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하지만!!”

 

  카더는 두 눈에 불을 피우고 혼을 담은 목소리로 열성 다해 외쳤다!

 

“한 생애를 함께하는 것만이 아닌! 영원에 필적하는 세월동안 하나가 되어 보내는 겁니다! 서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헐벗는 나신으로 한 몸이 되는 것! 아!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것도 영겁도록 즐겁게! 저는 당신과 깊은 곳까지 모든 걸 나누고 싶습니다!”

 

  징그럽다! 성희롱 좀 작작해! 무슨 말을 짓거리는 거냐! 그의 두 눈은 과장이 아닌 정말로 불타오르는 강렬함이 번뜩였지만, 그럴수록 그런 말이 대번 나올 정도로 매우 유감스러운 것이었다. 정말 의미를 알 수 없다.

  아니 그 이전에 헐벗는 나신? 너무 거시기하지 않는가! 깊은 곳까지 모든 걸 나눠? 너무 노골적이다 못해 저질이잖아! 차드는 그런 생각을 하며 어이없다는 듯이 카더를 바라봤고, 라네스는 그에게 한 달 동안 지겹도록 시달린 정령답게 지긋지긋해하였다.

 

“나, 나는 말합니다. 말씀은 고맙지만 사양… 히익!”

 

  나무정령 아이즈도 그가 하는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꺼림칙함에 치를 떨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어찌되었든 눈앞에 있는 이는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인간. 답례해야만 한다.

  하지만 카더가 참지 못하고 다음에 저지르는 짓을 보고, 그녀는 불쌍하게도 나뭇잎정령 스림과 함께 새파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카더는 한 손으로 아이즈의 손을 붙잡아 자신의 뺨에 가져가며, 우헤헤 하는 황홀한 얼굴로 스윽스윽 비벼댔다. 

 

“아아 이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 감미로운 향기…. 과연 정령 중에서 가장 많은 생명력을 보유한 나무의 정령답군요. 정말 아름답습니다.”

“……다, 당신을 드레이님이라 불러도 되겠습니까?”

“예? 아! 아시드레이니까… 혹시 저요? 뭐 상관없습니다만.”

“드레이님. 스림을… 부탁드립니다.”

 

  아이즈의 말이 끝나자마자 스림이 울먹이는 얼굴로 차드에게 다가와, 그의 허리를 붙잡고 매달렸다. 아이즈는 그 아름다운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다시 팔에서 나무 검을 뽑아냈다. 순간 카더는 긴장하며 즉시 거리를 벌리고 근처에 꽂아둔 자기 창을 집어 들었다.

 

“나는 말합니다. 용서를-!!”, “자, 잠깐! 내 말을 좀….”

 

  카더의 변명이 귀청이 찢는 굉음에 묻히며 동시에 뿌연 먼지가 사방을 뒤엎었다. 차드는 먼지로 인해 연신 기침해대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리를 안고 있는 탓에 눈에 들어간 흙먼지를 털어낼 수 없었다. 

  흙먼지가 걷히고 서둘러 스림과 라네스가 눈에 들어간 먼지를 털어주자, 차드는 이 장소에서 아이즈와 카더가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