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숲속으로 들어서며 드는 생각은 이름에 걸맞게 어둡고 음침한 장소라는 느낌이었다. 발을 딛자마자 바로 우중충하게 변한 하늘, 칙칙해 보이는 회색 나무, 으스스한 검은 나뭇잎 등. 보이고 느끼는 것을 넘어서 불길함을 전부 모아둔 것 같았다.

  만약 라네스가 옆에 없었다면 차드는 분위기만으로 질식해 얼어버렸을지도 몰랐다. 반면 카더는 정령의 가호가 없어도 심드렁한 얼굴로 주변을 살필 뿐이었다.

 

‘역시 이 사람… 보통이 아니야. 언동만 보면 약간 엉뚱하고 경박하지만.’

 

  첫 만남과 지금 현재, 그 사이에서 받은 인상만 뺀다면 카더의 모습은 서사시속에 나오는 영웅 그 자체였다. 강인해 보이는 인상에 이런 사악함 속에서 오히려 태연한 범상치 않은 태도…. 라네스도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그 몰래 감탄했다. 

 

“그런데….”

 

  그때 그런 영웅적인 모습의 카더가 갑자기 차드를 돌아보며 말했다.

 

“니들 언제까지 내 옆에서 사람 염장 지를 생각이냐?!”

 

  뜬금없는 영문을 할 수 없는 소리를 듣고, 차드와 라네스가 두 눈을 껌뻑이며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카더는 그들의 반응에 충혈 된 눈을 하며, 둘을 번갈아 가리킬 필요 없이 한곳만 가리켰다. 차드의 목을 껴안고 있는 라네스는 흥! 하며 그에게 쏘아붙였다. 

 

“이건 제 맹약자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행동이에요. 이 숲을 벗어날 때까지 이 자세를 유지할 생각이니. 그렇게 보기 싫으면 고개 돌리세요.”

 

  카더는 칫! 하며 차드를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 부러움이 담긴 부담스러운 시선을 외면하며, 차드는 이 숲이 주는 두려움보다 라네스의 부드러움이 주는 번뇌를 견디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이 구해야하는 소녀의 이름을 되뇌었다. ‘아리아리아리….’

  하지만 몸에 닿고 있는 이 정령의 가슴이라든가, 상큼한 머리카락이라든가, 허벅지 등이 너무나 야들야들하고 기분 좋아서…. 심각해야할 상황이고 실체가 없는 걸 아는데도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카더가 어떤 시선을 느끼고 그것을 집어왔다. 

 

“이건… 요정?”

 

  그것은 물색물결의 머리를 한 날개 달린 요정이었다. 아리가 아닌 진짜 등 뒤에 날개를 가진 요정. 카더의 손바닥 위에 앉은 난생 처음 보는 귀여운 요정의 모습에, 차드는 신기해하며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보려고 했었다.

 

“아시드! 위험해요!”

 

  라네스가 안 말렸다면 그랬을 것이다. 차드는 깜짝 놀라며 손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봤다. 그때였다. “……크……크……크……캬아아아악!!”

  얌전하고 귀여워 보이기만 한 요정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뜬금없이 쩌억 벌어진 입으로 차드의 손을 물려고 했다. 카더는 재빨리 요정을 움켜쥐고 그에게서 떨어뜨렸다.

  요정의 모습은 어느 새인가 변해 있었다. 깨끗한 물색물결은 점점 오염되어 검은 물결로 변색되었고, 외모도 귀여운 형태가 아닌 잔득 일그러진 기형적인 모습이었다. 카더는 손에 힘을 주어 요정으로 둔갑한 괴물의 몸을 찌그러트렸다. 빠직!

 

“으엑! 더러워!”, “옵니다! 아시드 대비하세요!”

 

  요정모습의 악령이 풍선처럼 끈적끈적한 악취와 함께 터진 게 신호였다. 오성을 자극하는 악질적인 존재가 이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으우우우우우우! 끼이이이익!!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와 차드는 자신의 귀를 막았다. 카더는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창을 두 손으로 부여잡았고, 라네스는 귀를 막은 차드를 더욱 꼭 껴안았다. 이윽고 음산한 나무들 사이에서 사악한 그것들이 튀어나왔다.

  짤막한 키에 도끼를 든 자, 여러 동물들의 모습이 혼합된 괴수, 그 괴수보다 월등히 큰 체격을 가진 몽둥이를 든 거인 등등. 그들의 모습은 평범한 인간과 달랐지만, 그런 특이한 생김새까지 썩고 일그러져 죽은 자가 되살아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카더는 즉시 앞으로 나서며 키 작은 좀비가 휘두른 도끼를 쳐냈다. 순식간에 좀비를 박살내고, 창을 넓게 휘둘러 접근을 막은 다음 속사로 빠르게 창을 내질렀다. 

 

“뚫고 지나간다! 뒤처지지 말고 따라와!”

 

  파팍! 하는 소리와 함께 악령들이 터져나갔다. 카더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창을 위로 회전시켜, 악령들을 쳐내거나 찌르며 그들을 하나하나 터트려나갔다. 차드도 자신의 검을 뽑아들고 달려 나갔다. 작은 키를 가진 단검을 든 악령이 그런 차드를 맞아주었다.

  무언가가 잘려나가는 소리와 함께 키 작은 망령의 목이 날아갔다. 단 번에 목을 베어버린 차드는 서둘러 카더의 뒤를 쫓았다. 그때 바로 옆에서 무형의 기운이 터졌다.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목 없는 키 작은 악령이 통째로 산산조각이 났다.

 

‘저들은 정상적인 상대가 아니에요. 급소가 없으니 그 점 유의해주세요.’

 

  라네스가 손짓으로 접근하는 것들을 으깨며 경고해주었다.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견디며, 차드는 마음속으로 수긍하고 열심히 팔을 움직였다. 얼마나 칼을 휘둘렀을까…. 악령들은 이 숲의 악명에 비하면 생각보다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그 결과 차드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그들의 포위망을 뚫고 나왔다. 그 사실을 문득 이상하게 여기다가 차드는 흠칫하며 주변을 살폈다.

 

‘없어…. 카더는 물론… 라네스도…. 어, 언제부터? 어째서 사라진 거지?!’

 

  차드는 꺾일 것만 같은 기분을 견디며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이제는 나무가 아닌 칙칙한 회색. 그에게는 아주 익숙한 건물들이 늘어선 하늘 좁은 곳이었다. 차드는 이 콘크리트로 되어있는 답답한 회색 숲을 잘 알고 있었다.

 

‘여기는… 내가 원래 있었던 세계다. 그것도… 크으-! 어렸을 때 본적 있는…!’

 

  방금 전까지 분명 숲속에 있었는데 어째서 도시 한가운데 서있게 된 걸까. 그런 의문을 떠올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차드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다가오는 이들을 경계했다.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은 구역질이 날 정도로 친숙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너는 못된 아이구나?」「▼신 같은 녀석!」「쓰레기!!」「너 같은 건 평생 공부도 못해서 성적도 바닥이겠지.」「머리가 안 좋으면 특기라고 있어야지.」「킥킥! 너 친구도 없지?」「웃기는 자식이네 이거?」「열심히 하겠다는 모습이 꼭 우습네.」「너한테 시킬 일없어.」「뭘 보고 너 같은 걸 선임자로 인정해야 하는데?!」「▲아이」「사이코!」「야! 미쳤냐?!」「아씨! 재수 없어!」「저 자식 짜증나!」「꺼져 왜 이쪽으로 온 거야?」「니 맘대로 하셔」 「무시하자」「어째서 네 녀석은 그런 모양이냐?」「제 잘난 듯이 살다 말겠지」「킥킥킥! 너는 청소는 잘 하니 청소부나 되면 되겠다.」「결혼은 할 수 있겠냐? 너 같은 거 좋아하는 여자는 없을 것 같은데?」「쯧쯧! 별종이네.」「기분 나빠.」「여기 네 자리 없어!」「죄송합니다.」「시시한 녀석.」「너 왜 사냐?」「너 애◆지?」「키키키키킥!」

 

  어린아이, 양복을 입은 남녀, 교복을 입은 중 고등학생, 얼굴에 화장을 떡칠해댄 아줌마, 세련된 복장을 하고 있는 젊은이, 군복차림의 마주치기도 싫은 버러지 새끼들!, 현실에 찌들 때로 찌들어 보이는 아저씨 등등.

  전부 얼굴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익숙한 것들이었다. 전부 하나 같이 기분 나쁜 목소리로 기분 나쁘게 웃으며 자신을 조롱해댔다.

  부르지 마, 부르지 마, 이름으로 부르지 마! 죽이고 싶다, 죽여 버리고 싶다, 지워버리고 싶다! 저 녀석들 멀쩡히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당장 없애버리고 싶어! 밉다, 역겹다, 추악해! 기억에 남는 것조차 찝찝하고 더러워!

 

‘……한 때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었지. 하도 많이 해서. 이제는 지겨워.’

 

  지긋지긋하다. 저들이 지금 와서 뭐라고 지껄이든 그것은 자기가 알바 아니다. 저것들이 뭐라고 자신을 저주해도 이제는 아무래도 좋다. 저런 게 하는 말을 일일이 신경 쓰는 것도 지쳤다. 그것보다 차드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저런 실없는 말보다 더 신경 쓰고 잊지 말아야할 일. 더 이상 저런 것에 휘둘려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서는 것은 사절이다. 이렇게 마음먹고 눈을 감자 자신을 괴롭히는 소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웃는 라네스의 얼굴이 보였다. 

 

“울었나요?”

 

  차드는 자신의 뺨을 만져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라네스는 그런 차드를 말없이 껴안았다. 마치 위로 하듯, 격려하듯. 그것만으로 차드는 기운이 났다. 신기한 일이었다. 고작 안겼을 뿐인데…. 왜 이렇게 안심이 되는 걸까….

 

“죄송해요. 제가 도왔어야했는데.”

 

  고개를 저으며 차드는 몹시 미안해하는 그녀를 마주 껴안았다. 잠시 동안 서로 포옹하던 둘은 슬며시 팔을 풀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카더는?”

 

“몰라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없어서…. 그 사람이라면 아마 괜찮을 거예요. 저를 무려 한 달 동안 쫓아다닌 사람인걸요. 그 정도 집념이라면 문제없겠죠. 이런 숲에서도….”

 

  과연 하고 납득하며 서둘러 지금 있는 곳을 벗어나 숲속을 뛰기 시작했다. 찾아야한다.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한다. 지금 차드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밖에 없었다.

  자신은 어떻게든 그냥 넘어갔다고 해도, 방금 전의 그것은 예전이었다면 상당히 위험한 악몽이었다. 그런 실감나는 악의를…. 마음속으로 깊이 새겨지는 비통함과 끝없는 분노를 지금 아리도 겪는다고 생각하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차드는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괜찮아야 해! 제길!! 왜 하필 여기인 거야!?’

 

  몹시 불길했다. 왠지 엄청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아악!!”

 

  기다렸다는 듯이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저편에서 울려왔다. 차드는 즉시 그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진로를 바꿨다. 초조한 와중에도 라네스의 그의 옆을 지키며, 저게 악령의 함정일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차드는 그녀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런 거 저런 거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다행히 이런 라네스의 우려는 그저 우려로 그치게 되었다. 그들의 시야 끝에서 주저앉은 사람은 확실히 아리였다.

 

“아리!”

 

  이름을 부르며 차드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그때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잽싸게 옆으로 피하며 뒤돌아서 확인해보자, 그것은 시퍼런 한기를 내뿜는 얼음 칼날이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아리가 순식간에 형성해 날린 것이다. 

 

“그만해! 그만해!! 그만해애앳!!”

 

  아리는 정신없이 소리치며 지팡이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삼월목의 지팡이에서는 그녀의 의지에 따라 여러 만물의 본질들이 파괴의 의지를 갖춰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칼날이 나무들을 배어버리고 뜨거운 불길이 그것을 태웠다.

  방금 전의 얼음덩어리도 닿는 모든 것을 얼려버리고 있었다. 심지어 폭풍이 봉인된 구슬이라든가, 여러 정기들을 흡수하고 그것들을 증폭시키는 광월도 있었다.

  지금의 아리는 너무나 필사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있는 데로 짜내, 한계 이상의 능력을 다가오는 자들에게 퍼붓고 있는 것이었다. 라네스는 말했다.

 

‘서둘러 막지 않으면 저 아이가 위험해요!!’

 

  차드는 한동안 아리가 쏟아내는 위협을 피하다니며 교착상태에 빠지다가, 빈틈이 보이자마자 바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무수한 진공 칼날들이 덮쳤다.

 

‘함정?! 저런 상태에서…. 하지만 피할 시간조차 아까워!’

 

  부디 크게 베이거나 사지가 잘려나가질 않길 빌며, 차드는 죽는다는 심정으로 나아갔다. 그런 차드의 뒤로 바짝 붙은 라네스가 팔을 휘둘러 바람을 일으켰다. 바람은 흙먼지와 함께 폭풍이 되어 진공 칼날들을 게걸스럽게 흡수하였다.

  허나 그런 폭풍을 우회해서 파고든 칼날들도 있었다.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함께 손에서 튄 끈적거리는 피를 느끼며, 차드는 이를 악물고 소녀에게 다가갔다.

 

‘멈춰야 해. 어떻게 해서든…. 저대로 내버려두면 안 돼!’

 

  아리는 그런 차드의 존재를 눈치 채며 눈물이 범벅인 얼굴로 죽을힘을 다해 술법을 사용했다. 뜨거운 화염, 차가운 냉기, 찌릿한 전류 등. 라네스가 대기의 막을 펼쳐서 애를 쓰고 막아도, 그 영향은 고스란히 차드에게 전달되었다.

  그럼에도 차드는 착실하게 아리에게 가까워져갔다. 소녀의 거부가 너무나 격렬해서 금세 다가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포기 하지 않고 조금씩 서서히 다가갔다. 어느 덧 가까워져가는 아리의 얼굴이 점점 공포로 물들어가는 게 보였다.

  두 눈에 초점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았다. 화려하지 않은 단정한 머리는 엉망진창.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평소의 귀여운 모습이 안 보인다. 그 만큼 아리는 필사적이었다. 차드도 필사적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소녀의 옷자락을 잡을 수 있었다.

 

“으아아아앙!!”

 

  잡히자마자 아리는 울부짖고 주저앉았다. 그러면서 두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두 다리를 버둥거리며, 어떻게든 차드를 밀어내고 멀어지려고 애썼다.

  이미 삼월목의 지팡이는 손에서 떨어져 바닥 위를 뒹굴고 있는데도, 힘없는 어린아이가 부리는 덧없는 몸부림으로 소녀는 울면서 저항하였다. 

 

“아리! 아리야!”

“그만해. 그만해. 이제 됐잖아? 그만하란 말이야! 이제 충분하잖아!! 그만해줘 제발!!”

 

  차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진정시키려고 해도 아리는 막무가내였다. 그 덕분에 여기저기 할퀴고 물렸다.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차드는 포기하지 않고 아리를 진정시키려했다. 그러다가 참지 못해….

 

“이…! 정신 차려 이 꼬마야아아앗!!”, “건들지 마아아!!” 꽝!

 

  성질난다는 표정을 짓고 자신의 머리를 아리의 머리에 확 박아버렸다.

 

“읏! ……에?”

 

  소녀의 눈에서는 겨우 초점이 잡히며 약간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리는 멍하니 눈앞에 다치고 피를 흘리는 차드를 올려다봤다. 방금 전까지 악몽에 시달린 탓일까. 눈물로 흐려진 시야로 마찬가지로 눈물을 흘리는 차드의 얼굴을 맨 처음 보게 되었다.

  차드는 말없이 그런 아리를 껴안았다. 강하게… 그리고 애타게…. 왜 그런 건지는 모르고, 단지 그렇게 해야겠다는 왠지 모르는 생각으로 아리를 꼬옥 품에 안았다. 

 

“차……드……?”

 

  아리는 아무 생각도 못하고 힘없이 안겨있어야 했다. 무의식중으로 부끄러움과 함께 뿌리쳐야한다는 인식은 있었지만, 좀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심지어는 자신의 영혼마저…. 마치 실 끊긴 인형처럼….

  그리고 그런 아리의 눈에서는 또 다시 눈물이 흘러나왔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알 것 같았다. 지금은 몹시 슬프다는 것. 또 어쩐지 울고 싶은 기분이라는 사실.

  소녀는 이런저런 체면이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펑펑 울고 싶었다. 그런 그녀에게 마침 딱 좋은 따뜻함이 바로 앞에 있었다. 그래서….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아리는 울었다. 처음에는 훌쩍훌쩍,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소리는 점차 커져 이제는 온 숲이 떠나가라 울어댔다.

  차드는 말없이 그런 아리를 더욱 꼬옥! 껴안았고, 소녀는 그 품에 얼굴을 꾸욱! 파묻었다. 자신이 누구한테 안겨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본인은 의식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생각했던 것이 그대로 말로 나와 겉으로 표현되었다.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 어, 어머니가 녀석에게 괴로워하고 있는데도…! 나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 아버지가 그들 탓에 점점 죽어 가는데, 나는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 끌려갔을 때도…. 무너진 집의 잔해 속에서 함께 웃었던 사람들이 처참하게 방치됐는데…. 나 또한 그 분들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어!”

 

  울먹이는 목소리는 괴롭게 느껴졌다. 듣는 그도 마음이 타들어갈 것 같았다. 

 

“녀석들이 내 옷을 찢는 것을 그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 그때까지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한테 내가 미소를 짓는 것을…. 지금의 나는 그냥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 어째서?! 어째서야?! 왜 이래야 하는 거야? 눈앞에 다시 바꿀 기회가 있었잖아?! 왜 못 바꾸는 거야?! 나는 왜 그래야했던 거야?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아리는 자기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무력했던 어린 자신, 어리석은 자신. 지금도 바꾸고 싶어도 바꾸지 못한 무능력한 자신을….

 

「나는 왜 그래야만 했던 걸까? 모든 걸 아는 지금도, 어려서 모자란 그때와 다른 지금도, 왜 나는 무기력하게 있어야만 하는 걸까?」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그때 그 녀석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했었다! 어떻게든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 죽였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자신의 과거도, 아리의 아픈 상처도, 그 녀석의 죽음도 전부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랬기에 차드는 아리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언제까지나 그녀를 소중히 안고 있었다.

 

‘울고 싶을 때 우는 게 좋아. 이때까지 참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울었으면 좋겠다. 차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만물의 본질들 중 가장 사나운 파괴의 기운이 휩쓸고 간 이곳에, 한동안 영원할 것만 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라네스는 주위를 경계하면서 둘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아리는 여전히 훌쩍훌쩍 거렸지만 처음과는 다르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누그러졌는지, 어느새 차드의 품에서 잠들어버렸다. 차드는 그런 아리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잠시 후 어쩐지 피곤하다는 생각과 함께, 차드는 조심스럽게 아리를 안아 들었다.

 

“돌아갈까? 라네스.”, “예! 계속 머물기에는 이곳은 너무나 위험한 장소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는 차드에게 라네스는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처음 이 숲에 들어섰을 때처럼 그의 목을 껴안았다. 아리는 찾았다. 카더가 남아있긴 했지만, 그를 찾는 것은 먼저 아리를 안전한 장소에서 쉬게 한 다음 해야 할 일이었다. 그때였다.

 

  쿵! 쿵! 밑에서부터 울리는 진동과 대지의 신음소리. 정령왕 아세라의 기세보다 못하지만, 어떤 거대한 무언가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인간이 걸을 수 있는 고작 몇 걸음을 비웃으며, 한 번에 많은 공간을 도약하는 그 걸음의 정체. 순식간에 차드와 라네스의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뭐, 뭐야! 저건!!”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고 긴장과 함께 드는 생각은 ‘최악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조금은 짜증난다고 느끼며 차드는 울상을 지었다. 지금은 아리가 제 능력을 발휘할 상황도 아니고 도움이 될 카더 또한 여기에 없다.

  그런 때에 기다렸다는 듯 뜬금없이 나타난 그림자. 그것은 건물 5층 높이의 흑갈색 나무껍질로 뒤덮여있는 거대한 덩치의 거인이었다.

 

“에더게즈. 저주 받은 나무의 망령이여….”

 

  거인에게 위축된 차드랑 다르게 라네스는 긴장 없는 목소리로 그 정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