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녀의 능력은 타인의 마음과 기억을 읽어내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목에 걸고 있었던 그녀의 펜던트가 그 능력의 발현을 억제하고는 있었지만 계속적으로 소모되었고 결국 깨어지고 말았다. 그녀의 ‘의사소통’도 그 능력 덕분이었다. 애초에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낯선 환경에 떨어진 이후,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그녀의 능력이 무의식중에 발현된 것이다. 막아야 할 둑에 금이 가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물이 새어나오고 있다면 그 둑은 조만간 터지고 마는 법.

그녀는 선비가 되고 싶다고 했다. 흔들림 없는 곧은 의지를 가진 존재. 그녀 자신은 그 능력 탓에 타인의 의지에 휘둘리고 말았으며 펜던트로써 봉인하여 스스로의 자아를 유지하였다. 그것이 그녀를 그녀 자신으로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가 그녀의 닻이었기에, 그가 카멜롯의 기사가 되기로 하였기에 그녀는 왕의 의지에 휘둘리는 도구가 되었다. 결코 원치 않았으며 본디대로라면 결코 겪을 리 없는 살인의 일상이 되었다. 최후의 여신으로서 흩어진 신비를 한데 끌어 모아 멸절함으로써 왕이 원하던 인간만의 세상을 이루는 도구가 되었다. 렉서스가 그토록 그녀 자신의 뜻을 위해 살라고 강조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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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세계의 틈에서 ‘그’는 깨닫는다. ‘그녀’는 인간이었음을. 비록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자신의 의지를 노래에 담아 전달하여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할지라도 ‘그녀’ 자신은 그저 한사람의 연약한 인간이었음을.

눈물이 흐른다.

아니, 어쩌면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세계와 세계가 연결되며 넘어오는 그 찰나의 순간, 그 틈새에서 ‘그’는 눈물을 잃어버렸다. 따뜻함도 상냥함마저도.

-아니, 그건 애초부터 없었어.

망가져 뒤틀렸던 그때 이미.

‘그녀’와 만나기 전에 이미.

‘그’는 잔인한 미소를 짓는다.

 

마침내 도달한 그 땅은 낯선 침입자인 ‘그’의 존재를 거부한다.

땅이

하늘이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

모두 ‘그’라는 저주받을 존재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거부하지마!』

밀려나 흘러 떠내려가려 한다.

안된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그녀’를 찾을 때까지는.

‘그’는 닻이 될 것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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싄은 예나라 사람이었다. 계림에서 온 아내와 아들 하나를 두고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산에 나무를 하러 들어왔었다. 아내 가람이 오늘은 어쩐 일인지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라고 해서 그럴 참이었다. 한참을 나무를 하다 잠시 땀을 식히려 나무그늘에 들어가 앉았다.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왔다. 범님도 여기까지는 내려오지 않는다. 쉬는 김에 아들인 메내가 그 고사리손으로 꼭꼭 주물러 싼 주먹밥이나 먹을까 싶었다. 지게에 달린 점심을 풀려 엉거주춤 일어나던 참이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무언가 시커먼 것이 그의 입을 틀어막고 뒤로 훅 낚아챘다. 어찌나 억센 힘인지 그가 아무리 건장한 사내였어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하릴없이 딸려들어간 그의 목덜미에 차가운 숨결이 와닿았다. 소름이 끼쳐 몸이 부르르 떨린다. 분명 화창한 날씨임에도 주변은 컴컴하고 오한이 든다. 목덜미에 따끔한 통증이 일더니 그곳으로 온몸의 기운이 쑥 빨려나가는 기분이 들며 핑 하고 현기증이 인다. 맥이 점차 느려진다. 손끝부터 몸이 차갑게 식어간다.

죽는다-

그의 목덜미에 고개를 처박았던 어둠이 탐욕스레 입술을 핥는다. 아까보다 더욱 크고 짙어진 어둠은 그의 입 안에 어둠 한줄기를 쑤셔박는다. 목덜미의 상처에 저주를 불어넣는다. 입 안으로 굵은 것이 밀고 들어온다.

“컥!”

괴로움에 저항하려하지만 고개를 돌릴 수도 입을 다물 수도 없다. 목구멍까지 밀고들어온 굵은 것은 안에 든 것을 뿜어낸다. 삼켜진다. 그의 목구멍을 타고 안으로 흘러들어간다. 안에서부터 시커먼 것이 스멀스멀 가지를 뻗어나간다. 목덜미 상처에서도 마찬가지로 스멀스멀 번져나간다. 서서히 그를 잠식해간다.

어둠이 그런 그를 웃으며 바라본다.

 

남편이 해가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자 가람은 아들을 끌어안고 오들오들 떨었다.

밤바람이 사납게 스치며 나뭇가지가 우수수 우는 소리를 낸다. 밤부엉이가 울다 못해 숫제 비명을 지른다. 밤이 소란스레 울부짖는다. 달조차 구름에 가리워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겪지 못한 무서운 밤이었다.

날이 밝아 사람들과 함께 남편을 찾아 산에 올라간 가람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있었다. 나무 그늘 아래 수풀 사이에 쓰러진 채 그가 있었다. 차라리 호환을 당해 갈기갈기 찢겼더라면 슬퍼하고 말았으리라. 그의 시신을 부여잡고 통곡을 하고 말았으리라.

그러나 그는 상한 곳 없이 온전했다. 창백한 피부 아래 검은 핏줄이 꿈틀댔다. 미약하나마 숨이 붙어있었다. 그것이 더더욱 두려웠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남편을 집으로 옮겼으나 가람은 메내를 끌어안은 채 바닥에 누운 싄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멀어지려했다. 방구석에 앉아 남편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메내를 품에 꼭 끌어안고 며칠이고 그렇게 노려보았다. 눈 밑이 시커멓게 죽고 눈이 충혈되어 번들거려도 그렇게 계속 노려보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남편은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죽은 게 아닌가 싶었으나 숨결은 미약하게나마 남아있었다.

갑자기 가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핏 잠이 들었던 메내는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자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가람은 그런 메내의 손을 우악스레 잡아끌며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메내는 끌려가면서도 안광이 흉흉히 빛나는 어머니를 보고 어머니가 미친 게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

“어머니!”

메내가 손을 당기며 불렀으나 어머니는 돌아보지 않았다.

“어머니! 어디가는 거예요? 아버지는 왜 두고 가요?”

“……었어.”

가람은 입안에서 계속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다.

“?”

그러나 메내는 어머니가 무어라 중얼거리는지 듣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가람은 충혈된 눈을 희번득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죽었어죽었어그이는이미죽었어…….”

그러나 뒤를 돌아본 메내는 활짝 웃으며 어머니를 돌아보고 말했다.

“어머니! 저기 아버지가 있어요! 우리한테 손짓하시는데요?”

“!?”

가람은 흠칫하여 그 자리에 얼어붙고말았다. 메내는 천진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가 같이 가자시는데요?”

가람은 벌벌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

“히익!”

놀라 뒷걸음치다 주저앉고 말았다. 창백한 얼굴의 싄이 어느 틈에 그들의 바로 뒤에 서있었던 것이다. 메내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 아버지도 같이 가실거죠?”

잡은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메내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아버지, 손이 차가워요.”

아버지를 올려다본 메내는 아버지가 기이하게 웃고있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싄은 눈을 떴다. 이상하게 손이 찐득거렸다. 의아해하며 주변을 돌아보던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입이 벌어졌다. 비명은 뒤늦게 터져나왔다.

“으아아악!!”

시체였다. 사랑하는 아내가, 사랑하는 아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나뒹굴고 있었다. 온몸의 피가 빨려 시체는 창백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마치 그의 이름(싄=흰)처럼.

“아니야…….”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비명을 질러봐도 부정해보아도 이미 벌어진 일이 없던 것이 되지는 않았다. 싄은 아내의 시체를 으스러져라 끌어안았다. 그러나 싸늘하게 식은 시신은 말이 없었다. 그의 뺨에 한줄기 핏빛눈물이 흘렀다. 그는 망연히 중얼거렸다.

“……여줘.”

죽은 아내를 끌어안고 흐느꼈다.

“나를 죽여줘…….”

『그럴수야 없지.』

그의 앞에는 어느새 어둠이 형체를 이루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큼직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죽인 아내를 끌어안고 올려다보는 그를 향해 말했다.

“순순히 죽게 할 수야 없지. 너는 내 닻이니까.”

마침내 손에 넣은 닻을 향해 ‘그’는 희열에 가득차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