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1.

그는 환희에 떨고 있었다.

드디어 돌아오셨다!

그와 같이 충실히 받들던 이들은 모두 그 사실만으로도 가슴 떨리는 환희에 벅차올라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전사들은 고개를 숙인 채 그가 - 그들 부족의 주술사가 가슴이 벅차 방울을 휘저으며 주문을 외우는 것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곰의 가죽을 뒤집어쓴 그들 부족의 전사들은 주술사의 손짓에 라 미리 받아두었던 약을 입안에 털어넣는다. 아까 모닥불에 던져넣은 약초의 향이 유난히도 코끝을 자극한다.

끊임없이 주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사들의 위로 아스라한 어두운 빛 안개가 내려앉는다. 아니, 어쩌면 일렁이는 모닥불로 인한 눈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사들의 눈에 점차로 광기가 어리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주술사의 주문이 드높아질수록 전사들의 광기도 더해간다. 핏발선 눈은 번들거리고 거친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는 입가에 거품이 물린다. 심장이 고동치며 몸 구석구석에 빠르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싸우고 싶다는 의지가 머릿속을 지배한다. 어서 적을! 나에게 적을!

주술사는 하늘을 우러르던 손을 내려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킨다. 전사들은 일제히 포효하며 그 방향을 향해 내달린다.

병사들은 자신들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는 곰떼의 습격에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광포한 하늘 너머 빛으로 짠 천이 너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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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환희에 떨고 있었다.

드디어 돌아오셨다!

그녀와 같이 충실히 받들던 이들은 모두 그 사실만으로도 가슴 떨리는 환희에 벅차올라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감았다 뜬 눈동자에 흰자위는 없었다. 온통 검은빛인 자위에는 세로로 찢어진 노란색 동자가 번득였다. 고양이를 닮은 그 눈을 증명하듯 그녀의 주위에는 수많은 고양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팡이를 너무도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는다. 지팡이 끝에 달린 말린 고양이머리가 그녀의 손길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눈을 뜨며 울음소리를 낸다. 모여있던 무수한 고양이들도 합창을 하듯 울음소리를 낸다. 아기울음소리와도 닮은 그 소리가 어둠에 퍼진다. 사방으로 흩어지던 소리는 점차 방향성을 갖고 어느 한곳을 향한다.

사람들이 잠들어있는 마을.

그녀는 지팡이를 들어 마을을 가리킨다. 고양이들은 일제히 마을을 향해 내달렸다. 날렵한 밤의 습격자들은 발소리조차 없었다.

세상모르고 잠들어있던 이들은 부지불식간에 목줄기를 물어뜯긴다. 혹은 숨은 붙여둔 채 뱃가죽을 갈라 내장부터 파먹힌다. 어쩌다 먼저 깨어난 용감한 이는 의자를 들어 덤벼드는 고양이를 후려갈기지만 그렇게 생겨난 빈틈을 놓치지 않고 노련한 사냥꾼들은 들보를 타고 올라 거침없이 머리위로 뛰어내린다. 비명소리는 이내 고양이울음소리에 묻혀버린다.

 

달빛 밝은 하늘 너머 빛으로 짠 천이 너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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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울어제낀다. 농사일에 집안일에 치질대로 지친 어미는 피곤한 눈을 뜨고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더듬더듬 불을 켜고 아기를 찾던 어미는 화들짝 놀라 불을 들이밀고 부지깽이를 집어든다. 화다닥 주먹만한 것들이 도망간다. 아기는 세상이 떠나가라 울어댄다.

쥐에 물려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다. 어미는 이놈의 쥐들 내 눈에 띄기만 하면, 하고 을러대며 불과 부지깽이를 내려놓고 아기를 안아 달랜다. 뭔가가 어둠속에서 화다닥 달리는 소리에 어미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부지깽이를 집어든다. 이놈의 쥐새끼들, 보이기만 하면 머리통을 뽀개줄 작정이다.

기세등등하게 오른손에는 부지깽이를, 왼손에는 등잔을 들고 일어난다. 불빛이 구석을 비추고 어미는 움찔한다. 어둡던 구석에 빛이 비치며 쥐의 눈이 반사되어 번득인다. 하나 둘 셋 넷…… 땡그렁 손에 들고있던 등잔을 떨어뜨리고 만다. 수십 쌍의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비명소리와 함께 쥐떼들이 어미의 몸을 뒤덮는다. 무게를 이기지 못해 넘어지자 더 많은 놈들이 올라탄다. 아기가 경기하며 울어젖히지만 아기역시 머잖아 쥐떼에 파묻힌다.

비단 이 집만의 일은 아니었다.

 

갉아먹히는 하늘 너머 빛으로 짠 천이 너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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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뭔가가 툭하고 목덜미에 떨어져 옷 속으로 들어간다. 여자는 손을 더듬어 끄집어낸다. 큼직한 벌레였다. 비명을 지르며 집어던진다. 벌레는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사사삭하고 바람에 나뭇잎 부비는 소리가 나며 바닥 어느 구석에선가 방금 던졌던 벌레들이 시커멓게 몰려든다. 비명을 지르며 물러서려하지만 이미 천장에도 벽에도 벌레들이 새까맣게 뒤덮고 있었다.

벌레들은 순식간에 여자를 뒤덮는다. 쓰러진 위로도 한참을 뒤덮던 벌레들은 어느 순간 썰물처럼 물러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쓰러진 여자는 아직 숨이 붙어 여릿한 신음을 흘린다. 붉은 반점과 파리한 안색 아래 가쁜 숨을 이어가던 여자는 한순간, 숨이 턱 막혀온다.

온 몸에 스믈스믈 번져가는 이물감에 눈이 크게 뜨이고 입이 크게 벌어진다. 그러나 토해내는 것은 비명이 아닌 벌레!

방금 전 습격당한 벌레와 똑같은 것이 여자의 입에서 코에서 눈에서 귀에서 끊임없이 기어나온다. 구멍으로 미처 나오지 못한 놈들은 피부를 찢고 기어나온다.

알에서 그 짧은 순간 성체가 되어 나온 벌레는 이미 너덜너덜해져 꿈틀거리는 숙주를 버려둔 채 다음 숙주를 찾아 기어나간다. 자신의 몸을 파먹고 자신의 몸을 뚫고 나오는 수천마리의 벌레들을 떠나보내고도 여자는 불행히도 아직 숨이 붙어있다. 차라리 죽는 것이 행복이거늘.

한사람 또 한사람을 거치며 벌레의 무리는 점점 더 커져 이내 바스락거리는 시커먼 벌레의 물결 속에 마을은 잠겨버린다.

 

꿈틀거리는 하늘 너머 빛으로 짠 천이 너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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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몽롱하다.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심지어 서있는지 누워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붕 떠있는 느낌.

보이는 것은 온통 새까만 어둠뿐이지만 그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그저 이대로 멍하니 있을 뿐.

귀찮다.

움직이는 것도 귀찮다.

생각하는 것도 귀찮다.

살아있는 것도 귀찮…….

 

서걱 어둠이 베이며 빛이 새어 들어온다. 너무도 강렬한 그 빛에 눈을 질끈 감는다. 낯선 목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이봐, 정신 차려!”

눈을 떠보니 여전히 사방은 어두웠으나 새까맣지는 않았다. 뭔가가 불타고 있는 것인지 지평선이 불그스레했고 하늘에는 마치 천자락처럼 빛이 춤을 추고 있었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 하늘만 올려다보던 그는 누군가에게 떠밀려 주저앉고 말았다. 그제야 하늘에서 시선을 뗀 그는 무엇이 자신을 밀쳤나 보았다.

등을 돌리고 있는 한 사내였다. 손에 무언가를 들고 몸에 무언가를 걸치고 무언가와 대치하고 있는 그 사내를 보고도 잠시 멍하니 있던 그는 서서히 제정신이 들었다.

저건 칼이다. 그리고 걸치고 있는 저건 금속을 덧댄 가죽갑옷이다. 그는 저 복장이 눈에 익었다. 그래, 저건 카멜롯의 기사다. 그러면 나는? 그는 자신을 내려다본다. 두터운 천을 덧대 만든 갑옷을 입고 바닥을 짚은 손에는 창대가 와 닿는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는 니힐렌의 병사다. 저건, 저 기사는 적이다. 창을 잡으려던 병사는 문득 주변을 둘러본다.

“히익!”

허리가 잘려 반만 남은 상체가 창을 잡고 있었다. 마치 꿈을 꾸듯 멍한 그 얼굴을 병사는 알고 있었다. 자신과 함께 뛰던 동료였다. 사반에 ‘무언가가 먹다 남은 듯한’ 시체부스러기와 파편이 널려있다. 서있는 사람은 없나? 온전한 사람은 없나?

“멍하니 있지 말고 정신 들었으면 뒤로 뛰어!”

귓가를 떄리는 음성에 병사는 불안한 눈을 들어 사내를 본다. 병사의 적은, 카멜롯의 기사는, 병사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뭔가와 대치하고 있다. 병사는 그제야 기사가 상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공포였다.

그것은 망각이었다.

그것은 덩어리진 커다란 어둠이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병사는 어쩐지 정신이 몽롱해졌다.

몇가닥의 말단이 마치 촉수처럼 꿈틀거리며 기사를 공격했고 기사는 거침없이 그것을 베어냈다. 그러나 그것도 소용이 없어 다시 하나로 붙어 기사를 후려쳤다. 기사는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아직도 멀었나?”

뭐가 멀었다는 것일까? 병사는 알 수가 없었다. 기사는 병사를 향해 외쳤다.

“거기 멍하니 있지 말고 뒤로 도망가란 말이다!”

“어?”

그 말에 다시 정신을 차린 병사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이내 다리가 후들거려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힐끔 그 모습을 본 기사는 혀를 찼다. 저래서야 달아나긴 글렀다. 이대로 저 병사를 보호하며 시간을 더 끌 수 있을까?

그때, 기사가 그제껏 기다려왔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는 유연하고 힘있는 존재. 비늘대신 점막으로 뒤덮여 열 개의 다리를 휘두르는 자. 머리는 아래에 몸은 위에 있는 뒤집힌 자. 두 개의 큰 눈 아래 뻗은, 다리에 숨긴 입은 부리이며, 빨판달린 다리는 손이다. 그대를 크라켄이라 정의한다!”

순간, 그저 공포일뿐이었던 어둠이 실체의 빛을 띄기 시작했다.

피부는 미끌미끌한 점액으로 뒤덮인 점막이었다. 늘어진 몸통을 머리처럼 두고 머리는 몸통 아래에 작게 보인다. 커다란 두 눈은 몸통과 촉수같은 다리 너머로 빛도 없이 새까맣다. 꿈틀거리는 다리는 하나하나의 굵기가 한 아름은 족히 넘어보인다. 난생 처음 보는 괴물의 모습에 공포에 질린 병사는 입만 뻐끔거린다. 반면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기사는 실체화된 상대를 보며 입꼬리를 올린다.

꿈틀거리던 다리 하나가 기사를 노리고 뻗어온다. 기사는 주저없이 칼로 내리친다. 그러나 실체화되었음에도 의외로 질긴 탓에 칼은 도로 튕겨나온다. 기사는 혀를 차며 망설임없이 칼을 버리고 바닥에 굴러다니던 전투도끼를 집어든다. 누가 쓰던 것인지는 몰라도 그 주인은 이미 세상에 없으리라. 머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공격을 피하고 기사는 발밑을 쓸어오는 공격에 위로 뛰어오른다. 그리고는 힘껏 무게를 실어 도끼를 내리찍는다. 이번에는 제대로 박혀 통나무같던 다리는 반쯤 끊겨 너덜거린다.

“흠, 이제야 좀 박히는군.”

멍하니 기사가 우는 모습을 바라보던 병사는 다시 일어난다. 후들거리던 다리에 힘을 주며 어떻게든 버티고 선다. 어둠을, 괴물을 직시했을 때 느꼈던 공포는 투지넘치는 기사의 모습에 크게 희석되었다.

싸울 수 있다.

병사는 자신의 창을 꼬나쥐었다. 그리고는 기사에게로 괴물의 신경이 집중된 틈을 타 기합을 지르며 돌격했다. 속도와 체중을 이용한 돌격에 창은 괴물의 점막을 찢고 깊숙이 박혔다.

“해냈다!”

병사가 기쁨에 외치는 순간, 괴물의 다리가 병사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비명을 지르는 병사를 가차없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새의 부리를 닮은 입이 움직이고 병사의 비명이 뚝 끊어졌다.

묘한 정적이 흐른다.

기사는 짓씹듯 외친다.

“네놈, 구운 오징어를 만들어주마!”

기사의 목소리에 호응이라도 하듯 하늘을 가르며 불화살이 날아들었다. 기사는 뒤편에서 날아드는 지원사격 아래 끊임없이 덤벼드는 다리를 끊어내고 위로 뛰어올라 다리를 타고 괴물을 향해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마침내 끝에 도달한 기사는 기합과 함께 도끼를 내리찍었다. 팍 하고 눈이 터지며 검은 물이 튀었다. 기사의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괴물의 숨통을 끊어버린 기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괴물의 시체 위에 걸터앉았다. 하늘에 일렁이던 여신의 베일은 흐려져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