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마오라는 놈은 사사건건 거슬렸다. 듣기로는 전장에 갑자기 나타나 무지막지하게 쇠사슬을 휘두르던 녀석이라고 하던데, 적어도 민츠는 그놈이 쇠사슬이건 밧줄이건 휘두르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거슬리는 것은, 언제 어느 때 시선을 돌리더라도 민트의 곁에는 저 마오놈이 항상 붙어다닌다는 사실이었다.

“아마 폐하께 전리품으로 하사받았다는 것 같던데?”

멜파가 이야기를 해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납득이 될 리도 없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마오와 이야기를 하고 있거나, 마오와 미소로 마주하고 있거나, 마오와 속삭이고 있거나, 마우와 무언가를 주제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민트는 초조하고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민트를 빼앗겨버릴 것만 같았다.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

민츠는 방도를 강구했다.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고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로 혼자 열심히 생각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는 떠올렸다.

“노래!”

민트가 가르쳐준 노래가 있었다! 다른 누구에게도 가르쳐준 적 없는, 오직 한사람 민츠만을 위해 불러주고 가르쳐줬던 그 노래!

민츠의 표정이 밝아졌다.

 

민츠는 민트를 찾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또 마오놈과 즐거운 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맹갈아? 뭘 맹그는데?”

“설마 맹가료의 의미를 아시는 겁니까?”

“아니, 그냥 말장난. 맹근다는 게 만든다는 말의 방언이잖아.”

까르르 웃으며 혀를 쏙 내미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귀여웠다. 그러나 웃어주는 상대도 장난치는 상대도 자신이 아니다. 민츠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민트의 손을 잡았다.

흠칫!

민츠는 도리어 깜짝 놀랐다. 평소와 달랐다. 그녀는, 민츠가 손을 잡자 흠칫하여 굳은 얼굴로 돌아보았다. 상대가 민츠임을 알고는 이내 표정을 풀었지만, 민츠는 단 한 번도 민트의 그런 반응을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그가 오기 전에 알.고.있.었.고. 그가 손을 내밀기 전에 손을 내밀어주었다. 아무리 깜짝 놀래키려고 해도 언.제.나. 예.상.했.다.는 듯 동요하지 않던 그녀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째서?

“……무슨 일이니, 민츠?”

잠시 걸린 듯 한 박자 늦게 나온 목소리는, 미소는, 그러나,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민츠는 이내 자신의 목적을 상기했다.

“노래 다 외었어. 불러주려고.”

“그래? 그런데 어쩌지? 이제 폐하께 가봐야 하는데……. 다음에 들려주렴.”

말투는 다정했음에도 민츠는 가볍게 밀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거.부.당.했.다.

어째서?

방금 전까지 그렇게 장난스레 웃던 얼굴을 왜 나에게는 보여주지 않고 가버리지? 어째서? 어째서!

멀어지는 민트와 마오의 뒷모습을 보며 민츠는 아득한 나락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것만 같았다.

눈앞이 새카매지며, 무언가 다.른.것.이 저 어둠 속에서 올라와 그를 대신하여 전면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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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어두운 방 안에서 누군가 움직이고 있었다. 달빛조차 구름에 가렸건만 방 안의 배치가 익숙한 그는 어디에도 부딪치지 않고 조심스레 움직이고 있었다.

마침내 목적대상에 다가간 그는 미리 준비해둔 끈으로 상대의 손목을 묶는다. 혹시라도 깰까 조심조심 작업을 마친다. 깨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었기에 매듭은 당장은 조금 헐거워도 움직이면 곧바로 조이게 되어있다. 이것으로 안심이다.

필요한 일차적 작업을 끝낸 그는 잠시 몸을 곧추세워 대상을 내려다본다.

훌륭한 사냥감이다.

훌륭한 일처리다.

잔인한 미소를 짓던 그는 품에서 단검을 꺼낸다. 두 눈의 광기처럼 칼날이 번득인다. 거치적거리는 대상의 옷을 가른다. 마침내 눈부신 나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나온다. 그의 칼솜씨가 서툴렀던 것일까? 가느다란 상처에서 붉은 피가 스며나온다. 그는 몸을 굽혀 상처를 핥는다. 비릿한 피맛은 익숙하지만 부드러운 살결은 처음 느껴보는 맛. 그는 참지 못하고 탐욕스레 살결을 핥는다. 그의 숨소리가 점차 거칠어져간다.

대상이 깨어났음에도 어떤 소리를 내는지도 어떤 표정, 어떤 눈빛을 하고 있는 지도 상관없다. 그 모든 것들은 그저 그의 욕망을 자극할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욕구를 배출할 방법을 찾느라 허덕였다. 그리고는 일전에 보았던 행동을 따라한다. 대상에게 자신의 몸을 겹친다. 격한 움직임과 거친 신음소리가 허공을 내달린다.

어느 순간, 그는 굳은 듯 멈춰버린다. 과거의 어느 장면이 플래시백 된다.

 

무릎을 끌어안고 숨어 있었다. 어둠속에 숨어 가느다란 틈새로 밖을 내다보았다. 침입자들은 그녀를 거칠게 잡아채 바닥에 쓰러뜨린다. 찢긴 옷가지에 그녀가 비명을 지르건 신음하건 개의치않고 강간한다. 몇 명의 사내가 더하여 그녀를 간살한다. 피와 정액에 더럽혀진 그녀의 시체는 참혹했다. 틈새가 열리며 커다란 손이 그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거침없는 손에 의해 그는 공중을 내달린다.

 

쾅! 벽에 내동댕이쳐지며 눈에 불이 번쩍인다. 그를 집어던진 이가 침대에 묶였던 이의 결박을 풀며 외치는 소리가 아득히 들려온다. “현혜까니십으찮괜!” “를츠민……!”

아득한 목소리와 벽에 내동댕이쳐진 충격은 다른 장면을 떠올렸다.

 

끊임없이 매질당하는 아이가 있었다. 죽지도 기절하지도 않도록 절묘하게 조절하며 아이를 매질하는 이는 끊임없이 주입한다. 너는 주인을 위해 싸운다! 너는 주인의 것이다! 너는 주인을 위해 싸운다! 너는 주인의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문으로 부서져가는 정신 속에 반복주입된 그 문장들만이 온전히 남는다. 입술이 달싹이며 반복하여 듣던 문장을 읊조린다.

“나는…….”

뒷말은 웅웅거리는 이명 속에 들리지 않는다.

 

“……!”

누군가 그의 뺨을 두드리고 있었다. 눈앞에 누군가의 얼굴이 어른거렸지만 초점이 맞춰지지 않아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민츠!”

여전히 모습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언제나 다정하고 따뜻하여 그를 언제나 받아들여주던 무한한……

“어머니…….”

그는 따스한 품에 안겨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그녀는 기절한 민츠를 끌어안은 채 토닥여주었다.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눈에는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마오는 걱정스레 그녀를 내려다보다 그녀의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시트를 다시 끌어올려 덮어주었다.

민츠를 끌어안고 토닥이고 있는 그녀는 조금 더 어려진 것 같았다. 그녀의 목에 걸려있던 펜던트는 심각하게 금이 가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았다.

“혜현.”

“…….”

마오의 부름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민츠를 안은 팔을 풀었다. 마오는 민츠를 침대에 눕힌 후 그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희미한 빛이 어리더니 스며들 듯 사그러들었다. 빛이 사라지자 마오는 손을 떼며 말했다.

“기억은 지웠습니다.”

“그래.”

그녀 또한 이미 밧줄을 포함한 증거가 될 만한 것은 모두 치워버린 후였다.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미리 꾸려놓은 짐을 챙겨든 그녀는 마오와 함께 방을 나섰다.

그녀가 사용하던 침대에는 부러진 활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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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숲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녀는 숲을 향해 차분히 읊조렸다.

“열려라.”

그러자 마치 거짓말처럼 숲이 좌우로 갈라지며 그녀 앞에 길을 열었다. 그녀의 목에 걸려있던 펜던트는 산산조각이 나 허공으로 흩날렸다. 그녀는 대동한 이와 함께 숲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숲은 본디대로 닫히며 다시 어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