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1.

요청은 갑작스러웠고 거부권은 없었다.

민츠와 멜파는 렌기스의 뒤를 따라 말을 몰고 있었다. 자신들의 담당기사가 아닌 렌기스를 따라가야 한다는 사실이 멜파에게는 못내 의아한 모양이었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민츠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이 빨간 머리의 기사가 민트나 폐하 등 특정한 몇 명을 대하는 태도와 그 외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다름을 알고 있었다.

민츠는 민트를 따라 처음 카멜롯에 오던 날, 활발하게 떠들던 멜파가 렌기스가 다가오자 긴장하던 모습을 기억했다. 자신의 담당기사인 렉서스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아도 렌기스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때 은연중에 보이던 감정을 기억했다. 성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렌기스를 공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기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렌기스가 민츠 자신의 ‘조인’을 참살하던 날을 기억했다. 민트가 아니었다면 민츠 역시 그의 손에 죽었을 것이다.

그는, 잔인한 자였다.

“이번 대상은 사교도 무리다.”

갑자기 렌기스가 말을 꺼내자 민츠는 움찔 했다. 옆에서 나란히 말을 몰던 멜파 역시 민츠와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렌기스는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렸는지 그런 두 사람의 반응을 알아차리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렇게 긴장할 것 없다.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임무니까.”

아무래도 긴장한 이유는 잘못 알고 있는 것 같긴 했지만.

“너희들 일은 간단하다. 입구를 막고 전진하면서 보이는 건 다 죽이면 돼.”

마치 풀이라도 베라는 식의 말투로, 거기에는 생명을 빼앗는다는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너희도 곧 기사가 될 놈들이니까 어렵진 않을 거다.”

렌기스의 마지막 말에 멜파는 가슴을 쫙 펴고 자세를 바로 했다. 멜파의 의지를 드러내듯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났다. 그렇게나 동경해오던 카멜롯의 기사가 된다는 말만으로도 그는 한껏 고양된다. 그런 멜파의 눈빛에 렌기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교도의 소굴에 도착한 민츠는, 기사들이 대체 이런 정보들을 어디서 잘도 얻어내는 것인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울창한 숲을 지나 산기슭에 꼭꼭 숨겨진 동굴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렌기스는 흔적조차 없이 움직이며 보초들을 모조리 베어버렸다. 칼을 넣은 렌기스는 두 사람에게 동굴안쪽을 가리켜보였다.

“여기로 똑바로 전진하면서 보이는 건 모조리 베어버려라. 전진속도는 느려도 상관없으니 확인사살도 잊지 말고.”

“예!”

“예.”

멜파와 민츠가 대답을 하자 렌기스는 다른 입구를 찾아 사라졌다. 멜파는 렌기스가 죽인 보초들의 시체를 보며 감탄했다.

“왜 민트님이 렌기스님을 3배 빠르다고 하는 지 알 것 같아!”

사실 민트가 그렇게 부르는 건 단순히 ‘빨갛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지만 멜파가 그런 것까지 알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민츠 또한 그런 내역을 알 수 있을 리 만무했기에 멜파의 말에 동의했다.

멜파와 민츠는 칼을 뽑아들고 천천히 동굴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 문득 멜파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

“박쥐같은 거도 나오면 죽여야 될까?”

“……그러게?”

두 사람은 고민에 빠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사람은 전진하는 동안 평범한 박쥐나 평범한 쥐 따위는 만나지 않았다. 대신, 사람이라든지, 그리고 사람이라든지, 또 사람이라든지, 하는 것들만 튀어나왔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 없이 상대를 베어버릴 수 있었다. 물론 꼼꼼하게 확인사살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동굴은 사람손이 닿았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질 정도로 걷기 편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중간중간 벽에는 횃불까지 걸려있어 조명걱정도 없었다. 다만 힘들었던 건 그림자에 숨어 이동하던 검은 뱀이었다.

아마도 동굴 안의 박쥐나 쥐 따위를 다 잡아먹은 범인인 듯한 커다란 검은 뱀이 횃불에 일렁이는 그림자에 숨어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갈 뻔 했으나, 천운이 그러했는지, 멜파의 방패에 머리를 강타당한 사교도 하나가 쓰러지면서 지나가던 뱀을 깔아뭉갠 것이었다. 그때까지 있는지도 몰랐던 검은 뱀을 발견한 두 사람은 하마터면 놓칠 뻔 했다는 생각에 두말없이 한마음 한뜻으로 검을 휘둘렀고, 검은 뱀은 순식간에 세토막이 나버렸다. 민츠는 그러고도 혹시 몰라 뱀의 머리를 박살내버렸다.

그 뒤로 두 사람은 벽에 걸린 횃불을 하나 집어들고 그림자 곳곳을 비추며 혹시 또 못본 검은 뱀이나 다른 동물은 없는지 재차 확인하며 전진해나갔다.

 

동굴 중앙에 도착하니 이미 렌기스가 먼저 와 있었다. 주변에는 사교도들의 시체가 즐비했고 뭔가 의식을 치르려던 것인지 희한한 도구들과 문양들이 즐비했다. 물론 렌기스가 모조리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려 원형 따윈 알아보지도 못하겠지만.

그런 렌기스가 아직도 처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게 있었다. 머리가 셋 달린 커다란 개와 그 뒤에 숨어있는 주술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렌기스는 멜파와 민츠가 도착하자마자 돌아보지도 않고 물었다.

“뱀은?”

순간적으로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렌기스는 두 사람이 하마터면 못보고 지나칠 뻔 했던 바로 그 검은 뱀을 해치웠느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죽였어요.”

“잘했다.”

멜파와 민츠는 렌기스 몰래 서로 말없이 눈짓을 교환했다.

‘놓치지 않고 해치워서 천만다행이다.’

‘그러게.’

만약 놓쳤으면 무슨 꼴을 당했을지 몰랐다.

 

삼두견은 역시 아무래도 만만치 않았다. 개라는 놈이 원래 그러하듯 렌기스가 주술사에게 한발이라도 다가서는 것을 막고 있었다. 그 사이 주술사는 뭔가 주문을 외우고 있었고 지금 상황에서는 그걸 막을 방도가 없었다. 저 삼두견에게 칼을 휘두르면 머리 하나가 칼을 물어 막고 다른 머리가 손을 물어 오히려 칼을 뺏으려 들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 멜파와 민츠가 도착함으로써 상황이 바뀌었다. 삼두견은 비록 머리는 셋이었으나 몸은 하나였기에 세 사람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다소간의 부상을 감수하고 주술사에게 몸을 날린 렌기스는 주문이 완성되기 전에 주술사의 목을 날려버렸고, 민츠와 멜파는 삼두견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그렇게 전투가 끝이 났다.

렌기스는 동굴 중앙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였다. 시체들과 주술용구들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렌기스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신은 떠난 지 오래. 이곳은 인간의 땅이다.”

그리고는 등을 돌려 동굴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들어온 길을 나가던 도중, 뭔가 커다랗고 기다란 검은 덩어리가 김을 막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까 죽였던 검은 뱀이 주술사의 주문에 의해 커다랗게 변한 것이었다. 사람따위는 순식간에 삼켜버릴 듯한 무시무시한 크기의 검은 뱀은, 몸통쪽 두 토막은 하나로 이어져 붙어있었으나 머리쪽 토막은 처음크기 그대로 박살난 채 떨어져 있었다. 머리가 박살나지 않았다면 그대로 다시 이어져 커다란 뱀이 되어 동굴인 척 입을 떡 벌리고는 밖으로 나오던 세 사람을 그대로 꿀꺽 삼켜버렸을 터였다.

“……잘했다.”

렌기스는 이때만큼은 정말로 진정성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함께 임무를 마치고 민츠와 멜파는 렌기스가 생각만큼 잔인하거나 어려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피로 물든 갑주를 닦고 옷을 갈아입으며 민츠와 멜파는 두 사람 다 그렇게 느꼈음을 알게 되었다.

……결코, 그 잔인함에 ‘익숙해진’ 것은 아니리라고.

 

그리고 자랑스레 카멜롯으로 돌아온 민츠는 곧바로 민트를 찾아 달려갔다. 이번 임무를 받기 전에 엘소드와 함께 전쟁터로 나갔던 민트가 그동안 돌아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트를 발견한 민츠는 와락 안겨드는 대신 그대로 그 자리에 못박힌 듯 멈춰섰다. 한동안 못 본 사이 민트의 옆에 모르는 남자가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야?”

“마오라고, 이번에 주워왔어.”

민트는 상큼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한동안 웃음에도 그림자가 드리운 것 같았건만 지금의 민트에게는 그런 기색이 말끔하게 지워졌다.

‘이놈 때문이야? 그런 거야?’

그러고보니 민트의 머리카락도 길어지고 어쩐지 예전보다 더 예뻐진 것 같았다. 민츠의 마음속에 화르륵 불길이 치솟았다.

질투에 눈이 먼 민츠는, 그랬기 때문에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