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 곳에는 생명력이 넘쳐흐른다.

원시의 초록.

태고의 숨결이 그대로 남아있는 마냥 숨 막힐 듯 짙푸름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청정한 공기에는 그 너머 물을 머금고 있음을 알려온다. 눈보다 귀가, 그리고 귀보다 코가 먼저 폭포의 존재를 알아차린다. 부드러운 녹색 이끼로 뒤덮인 바위 위로 맑은 물이 시원스레 흘러내려 그 아래 자리한 샘을 이룬다.

이곳은 여신이 머물던 성소(聖所). 여섯 개의 젖으로 생물을 낳아 길러 이윽고 지상을 떠날 때까지 머물던 여신의 안식처.

『…….』

움직이지도 말을 하지도 않고 그저 의식만이 가만히 저 너머를 향한다. 이 성스러운 땅에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 오고 있었다.

 

거친 말투로 고성이 오고간다.

“오만하고 불손한 놈들! 썩 꺼져버려!”

“저주받을 카멜롯의 개들 같으니!”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가지 말라도 갈 거야! 일 다 끝나면!”

욕설을 내뱉으며 일행을 몰아내려는 사람들에게 조금도 기죽지 않고 마주 고함을 지르는 건 민트였다. 민츠는 손이 움찔움찔 칼 손잡이 근처를 오갔다. 드니즈는 두 사람을 감싸듯 하며 슬금슬금 방향을 돌리고 있었다.

애시드에 대한 믿을 수 없는 정보의 발원지는, 흔히들 말하는 ‘여신의 배꼽’이었다. 카멜롯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곳에는 불과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여신이 머물렀다고 했다. 그렇기에 이곳은 성지. 그렇게 여기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그러니 아직까지 여신을 섬기는 이곳 사람들이 민트일행을 적대시하는 것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그렇다고 아, 그렇습니까, 하고 물러날 생각도 없다.

일행과 신도들 상이에 마침내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리라 예측한 그 시점에, 돌연 신도들 뒤쪽에서부터 목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입을 다문 신도들은 양 옆으로 물러서며 길을 내어주고 있었다. 자발적으로 생겨난 인파의 갈래사이로 그렇게 다가온 이는 허허로운 표정의 노인이었다.

성난 군중을 아무런 말없이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진정시키고 자발적으로 길을 내주도록 하는 이가 제아무리 허허로운 표정의 노인네라 할지라도 범상할 리 없었다.

“카멜롯에서 온 이들이시오?”

가느다란 목소리였기에 주변이 조용하지 않았다면 알아듣기 힘들었을 것이다. 드니즈가 앞으로 나섰다.

“그렇소.”

노인은 그런 드니즈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장시간의 침묵에 주변이 못 견딜 즈음, 노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를 여기서 몰아낼 수는 없을게요.”

“그럴 생각도 없소.”

다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노인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 땅에는 여신께서 남겨둔 수호자가 있소.”

“앞서 온 이에게도 그렇게 말했겠지.”

드니즈가 애시드를 언급하자 노인의 미소는 눈에 띌 정도로 짙어졌다. 애시드는 드니즈와 마찬가지로 홀로 임무를 띠고 여행을 하던 이였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역량을 잘 알고 있었고 누구보다도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해왔다. 그런 그가 죽.었.다.

“안내해.”

“!?”

뒤쪽에서 거침없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아졌다. 민트는 갑작스런 시선집중에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뻔뻔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수호자인지 나발인지한테 안내하라고.”

“…….”

군중사이에서 또 욕지거리가 터녀 나오리라 예상했건만 오히려 비웃음담긴 시선들이 돌아왔다. 노인 또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표정으로 민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몸을 돌리며 말했다.

“따라들 오시게.”

일행은 노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드니즈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나아가는 민트의 모습을 보며 아까 느꼈던 위화감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민트는 비록 거침없고 제멋대로라는 인상을 주긴 하지만 자신의 규칙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 안에는 계급이 낮다한들 나이가 명백하게 연상인 노인에게 존대하고 존중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록 화가 나거나 흥분을 했다한들 몸에 배어 있는 습관상 민트는 연상에게, 특히 어르신에게 반말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민트가 저 노인에게 저런 불손한 태도를 보인 것은 확실히 이상했다. 비록 애시드의 죽음이 얽혀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위화감이 들 정도로.

 

짙은 녹음 사이로 청량한 공기가 밀려온다. 눈앞이 환해질 정도로 확연히 다른 공기가 존재한다. 물내음이, 소리가, 폭포의 존재를 알려온다. 숨 막힐 듯 짙푸른 태고의 원시림 너머, 부드러운 녹색 이끼로 뒤덮인 바위 위로 흘러내린 물이 이루어내는 샘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신의 배꼽.

여신이 머물던 성소.

말로 하지 않아도 이미 몸과 마음이 그 사실을 깨닫고, 그리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부정할 수 없는 성스러움이 맴도는 이 땅에 발을 딛기조차 송구스럽다는 듯 노인은 걸음을 멈추고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노인이 걸음을 멈추든 말든 개의치 않고 민트는 성큼성큼 앞으로 더 나아갔다. 그리고 외쳤다.

“나 곽혜현이 여기에 왔다!”

『……기다리고 있었다.』

우르릉 땅이 울리며 바위가 일어섰다. 뒤쪽사람들이 움찔하여 물러서건 말건 민트는 흔들림 없이 서있었다. 주춤 물러서려던 민츠는 민트가 이쪽을 흘깃 돌아보는 시선에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텨섰다. 민트는 그런 민츠의 모습에 굳은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다시 정면을 향했다.

일어선 것은 바위가 아니었다. 흡사 바위와도 닮은 거인. 까마득히 높아 보이는 거인이 일어선 발밑에는 애시드의 것으로 보이는 유해와 그 외 다른 이들의 유해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여신이 남긴 수호자.

여신이 낳은 거인.

그 여신이 여섯 개의 젖으로 생물을 낳아 길러 이윽고 지상을 떠난 대지모신이었음은 굳이 이를 것도 없었다.

『이 땅에서 태어난 그 누구도 나를 해할 수 없다.』

거인은 일렁이듯 말했다. 민트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기에 뛰어난 기사였던 애시드는 거인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너는 그 무엇도 죽일 수 없다.』

저녁거리로 잡아온 토끼 한 마리조차 죽일 수 없었다. 민츠는 놀라 민트를 돌아보았다. 그런 거였나? 죽이지 ‘않은’ 게 아니라 죽이지 ‘못한’…….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렀을 때, 거인이 다시 말했다.

『따라서 너는 나를 죽일 수 없다.』

스릉- 가슴을 울리는 서늘한 쇳소리와 함께 검이 뽑혀 나왔다. 평소와 같은 활이 아닌, 연습 때를 제외하고는 실전에서 사용하는 걸 본 적도 없는 검을 든 채 민트는 말했다.

“그동안의 ‘나’는 확실히 그러했지만,”

잠시 이를 악문 채 굳은 미소를 짓던 민트는 민츠를 흘깃 돌아보고는 거인을 향해 말했다.

“이후의 ‘나’는 어떻게 될지 몰라.”

『그대는, 후회할 것이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둘은 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