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민츠는 말 위에서 흔들리면서도 드니즈를 향해 경계의 시선을 늦추지 않았다. 선두에 서서 일행을 인도하던 드니즈는 뒤통수에 꽂히는 따가운 시선에 미소를 지었다.

“앞을 제대로 보는 게 좋을 텐데?”

쳇 하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좀 더 불만을 토로할 만도 하건만 민츠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러지 ‘못’했다. 아직 연습도 부족한 상태이건만 혼자 말을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카멜롯에 올 때에는 민트의 뒤에 타고 있었지만 지금은 따로따로 말을 몰고 있었다. 원래대로였다면 그저 수련생일 뿐인 민츠가 혼자 말을 몰 일은 없었겠지만 이번 일은 워낙 사안이 사안이다보니 민츠에게도 말이 주어진 것이다. 다만 연습부족인 건 어쩔 수 없어서 말 위에서 떨어지지 않는데 온정신을 집중해야 하는데다가 몸이 흔들리기 때문에 혹시라도 혀를 깨물지 않도록 입을 다물고 있어야했다. 그래서 민츠는 불만을 토로하는 대신 드니즈의 등을 노려봐주는 것이다. 물론 말을 한다 할지라도 민츠가 솔직하게 불만을 늘어놓을 귀여운 성격도 아니었지만.

“노래라도 불러줄까?”

민츠 때문에 전체적인 속도가 느려진데다가 분위기도 좋지 않자 민트는 가벼운 투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드니즈가 반색하며 돌아보았다.

“어떤 노래?”

드니즈는 민트의 노래를 특히나 좋아했다. 민트는 그의 물음에 대답대신 노래로 답해주었다.

 

 토리토리 영글었다

 하나 둘 셋 네 개

 토실토실 영글었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개 채워놓고

 동글동글 동그라미

 내 입에 하나 쏙

 네 입에 하나 쏙

 토리토리 동글토리

 남은 것은 몇 개일까?

 

단순하고 경쾌한 리듬의 노래가 끝나자 민츠는 한순간 고민에 빠졌고 드니즈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루센지방 동요 아냐?”

“거기가 상수리나무가 많더라고. 그래서 답은 몇 개?”

민트의 질문에 드니즈는 잠깐 노래를 되짚어보았다. 그때 뒤쪽에서 조그만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덟 개.”

“민츠 정답!”

민트는 활짝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민츠는 그런 민트의 미소에 따라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민트는 계산이 한박자 늦어버린 드니즈를 타박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다음 간다? 이번엔 누가 맞힐까?”

 

 토리토리 영글었다

 둘 넷 여섯 여덟

 토실토실 영글었다

 열 열둘 열넷 열여섯

 열여덟 스물 채워놓고

 동글동글 동그라미

 내 입에 네 개 쏙

 네 입에 아홉 개 쏙

 토리토리 동글토리

 남은 것은 몇 개일까?

 

갑자기 문제의 난이도가 확 올라가자 드니즈도 민츠도 한동안 입안으로 중얼거리고 손가락을 꼽느라 조용해져버렸다. 민트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끅끅댔다. 셈하기는 기사의 필수소양이긴 하지만 직접 군대를 지휘하지 않는 드니즈나 아직 어린 민츠는 둘 다 셈이 서툴렀다.

그들이 빚어내는 소리의 공백 속에서 민트 또한 침묵에 잠겼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굳은 표정으로 민트는 클라이드가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민츠를 데려가도록 종용했다.

‘민츠가 나의 추(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는 그녀에게, 그리고 소년에게 그런 운명을 지우려 한다. 단지 그 한사람만의 의도가 아니다.

‘카멜롯의 기사’라는 것의 존재이유. 그저 한 나라의 왕 아래에서 한 나라를 이루고 확장하고 다른 나라를 정복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그 시작이 드래곤의 퇴치 혹은 살해 - 그것이 어떤 이름이든 상관없다 - 였다는 것만으로도 명백하다. 드니즈와 애시드가 다른 기사들과 달리 성에 붙어있지 않고 외부로 다니는 것 또한 그 맥락에서였다.

신비의 살해.

신이 지상을 떠나고 아직 얼마 지나지 않은 시대. 인간이 땅을 갈라 나라를 세웠다한들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존재. 산과 숲과 강물에 아직까지도 살아 숨쉬고 있는 존재. 그 모든 신비를 살해하고 오롯이 인간만의 땅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그 땅을 하나로 통일하여 인간의 왕이 되는 것. 그것이 왕의 바람이다.

“그것이 나의 바람이다.”

무심코 중얼거리던 민트는 흠칫하여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것은 그녀의 바람이 아니다.

‘내 바람은 선비가 되는 것.’

육예(六藝 : 禮、樂、射、馭、書、數)를 고루 익히고 뜻을 바로 세워, 위로는 임금을 받들고 아래로는 백성을 보살피며, 바른 말을 하는 데 굽힘이 없고 바른 일을 행하는 데 거침이 없는 그런 선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그러나 그 바람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건 누구보다도 그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가슴속에만 간직하고 가벼이 입에 올리지 않았었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은 이미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드니즈를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노래를 좋아했다. 비록 그것이 ‘속임수’라 할지라도. 그러나 선비는…….

선비였다면, 그녀가 바른 말을 하는 데 굽힘이 없고 바른 일을 행하는 데 거침이 없는 그런 선비였다면, 왕의 바람이 초래하게 될 결과들을 경고하며 저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섯, 아니, 음, 여섯 개?”

“일곱 개!”

두 사람이 동시에 답을 외치자 민트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드니즈 정답!”

민트의 판정에 드니즈가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어보이자 민츠는 입을 삐죽거렸다. 민트는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다음 문제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민츠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그 모습을 보자 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민츠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문제를 놓치지 않곘다는 눈빛은 여전했다.

민트는 잠시 고민을 접어두고 다시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고민, 그리고 왕에게 경고하지 않은 이유.

- 그녀 자신이 바로 ‘신비’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