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엄선된 순결한 소년들이 성스러운 대지 위에 섰다.

제사장의 손끝에 축복받은 단검이 들려 흰 빛을 뿌렸다.

이윽고 제사장은 칼끝을 돌려 소년들의 국부를 겨누었다.

능숙한 손놀림에 도려내어진 남근이 땅어 떨어지고, 있어야 할 것이 사라진 부위에서 순결한 피가 샘솟았다.

순결한 소년의 가장 생명력 강한 피가 대지를 적시며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준비를 마친다.

 

성스럽고도 경건한 이 자리에 참관하던 한 사내가 입을 연다.

“미안합니다.”

그의 사과에 경건한 태도로 단검에 묻은 피를 닦아낸 제사장이 그를 향한다. 그는 이어 말한다.

“나는 당신들의 풍습과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사장은 그에게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열등한 자가 고등한 존재를 이해하는 건 쉽지 않지요. 그것 때문에 당신이 사과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사장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미안합니다. 왜냐하면…….”

스릉- 그의 칼이 칼집에서 빠져나왔다. 검을 쥔 손을 늘어뜨린 채 그는 말을 이었다.

“……그것을 이유로 하여 당신들을 죽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그러나 제사장은 채 말을 맺지 못했다. 그의 칼이 제사장의 목을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눈을 크게 뜬 채 입만 뻐끔거리던 제사장의 머리가 뒤로 넘어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때까지도 서있던 제사장의 목잃은 육신이 뒤를 잇듯 무너져 내렸다.

어찌된 영문인지 어안이 벙벙하여 황망히 그를 바라보는 시선들 속에서 그는 칼날에 묻은 피를 떨어낸 뒤 춤이라도 추듯 가볍게 칼을 휘둘렀다.

학살이 시작되었다.

 

순결한 제물을 골라 피로써 대지를 정화하며 풍요를 기원한답시고 약한 이의 소중한 것을 앗아가던 이들의 시체가 그들이 섬기던 대지를 뒤덮고 그들 자신의 피로써 목마른 대지를 적셨다. 사내 - 드니즈는 또 하나의 신비를 살해한 것이 여상적인 일인마냥 칼에 묻은 피를 닦아낸 뒤 먼 눈을 들어 그리운 곳을 바라보았다.

지난번 카멜롯에 들렀을 때에는 엇갈려서 만나지 못한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 노랫소리였지만.

“그럼, 돌아가 볼까?”

민트의 노래를 듣기 위해, 그리고 겸사겸사 보고도 하기 위해 드니즈는 카멜롯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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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롯은 인간의 땅이다. 비록 예전에도 이 땅에 사람은 살았지만, 카멜롯이 지금의 카멜롯이라 불리는 것은 현재의 칼린도 왕이 드래곤을 쓰러뜨리고 성을 되찾은 그 순간부터였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며 날아와 왕을 물어죽이고 성을 차지하고 앉은 드래곤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낮에도 드래곤의 불길은 성 위로 치솟았고 밤에는 드래곤의 눈이 달빛보다도 환하게 주변을 감시했다. 성의 벽은 드래곤이 날아와 공중에서 떨어뜨린 사람들의 시체로 짓뭉개져 붉게 물들었다. 하루하루가 공포의 나날이었다.

그 와중에 릴리프 왕녀는 호위기사 메이트니의 도움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마지막 남은 왕족이었으되 그 자신은 그저 가녀린 소녀에 불과했던 릴리프 왕녀는, 그러나 저 드래곤을 두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것이 칼린도 왕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왕이 아닌 기사로서 클라이드, 렌기스와 함께 편력하던 칼린도는 릴리프 왕녀에게 첫눈에 반해버렸고, 그녀의 눈물어린 호소에 기사들과 함께 드래곤을 향해 칼끝을 겨누었다. 사흘밤낮으로 이어진 그 싸움은 결국 드래곤의 처절한 비명과 함께 막을 내렸고, 릴리프 왕녀는 칼린도를 남편이자 왕으로 맞아들였다.

그것이 카멜롯의 시작이었고 칼린도와 릴리프는 각각 새로운 나라의 왕과 왕비가 되었다. 드래곤과의 싸움에 함께했던 클라이드, 렌기스, 메이트니 이 세 기사가 현재 카멜롯의 기사라는 이름의 시초가 된 것이다.

 

“……라는 이야기지.”

이야기가 끝나자 민츠는 입만 뻐끔뻐끔 거리다가 결국 한마디 내뱉듯 외쳤다.

“거짓말!”

그 말에 민트는 어깨를 으쓱했다.

“일단 들은 얘기는 그래. 별로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니까 당사자들한테 물어보지 그래?”

“사실이랬어.”

멜파가 불쑥 끼어들며 말하자 민츠는 움찔하고 물러섰다. 멜파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성에는 아직 그때 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물어봤었거든. 나도 그 얘기 때문에 기사가 되려고 온 거였으니까. 물론 어릴 때 주변 어른들에게 들은 소문은 좀 더 거창했지만.”

“…….”

멜파까지 나서서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하니 민츠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얼굴이 되어버렸다. 드래곤이라는 건 먼 세상 이야기라고만 여겼는데 같은 카멜롯 성 안에 실제로 드래곤을 목격하고 싸우고 죽인 사람들이 있다니 전혀 실감이 나질 않았다.

민트는 이야기의 사실여부를 두고 미심쩍어하는 민츠와 그런 민츠에게 사람들에게 들은 세세한 내용을 말해주며 이야기가 사실임을 증명하려드는 멜파의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성격도 나이도 경험도 다르지만 같은 카멜롯의 기사수련생으로서 두 사람은 분명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저울추가 되겠지.’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들 하고 있어?”

불쑥 끼어든 남자의 목소리에 돌아본 민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드니즈!”

“여, 노래하는 공주님! 잘 지내셨습니까?”

농담어린 드니즈의 말에 민트는 깔깔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새 노래도 배웠으니까 불러줄게.”

“그거 영광인데?”

드니즈는 민트의 말에 정말 기쁜 듯 미소지었다.

 

모처럼 카멜롯에 기사들이 모두 모였다. 단 한명을 제외하고.

애시드만 빼고 다 모인건가?“

“그러게. 그러고보니 이번엔 정기보고도 건너뛴 것 같은데?”

드니즈의 말에 렌기스는 상좌를 돌아보았다. 상좌에 앉아 엄격한 중년가장의 포스를 풍기고 있는 이 기사가 바로 카멜롯 기사들의 수장인 클라이드였다. 민트가 기사단 내에서 ‘아저씨’라고 부르는 두 사람 중 한명이기도 했다. 나머지 한명은 저쪽에서 나이젤에게 자제를 권고하고 있는 민머리 기사인 메이트니였다. 비록 머리는 밀었으되 수염을 길러 꽤 중후한 멋이 있었다.

렌기스의 지적에 클라이드가 입을 열었다.

“방금 렌기스가 말한 대로, 애기스의 정기보고는 도착하지 않았다. 대신 그에 대한 안좋은 소식이 들어왔다.”

“?”

한순간 중구난방으로 제각기 떠들던 기사들이 모두 이야기를 멈추고 클라이드를 주목했다. 그리고 그의 입이 열리고 ‘안좋은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좌중이 술렁였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내용이었다.

“말도 안돼! 그 녀석 그렇게 쉽게 죽을 놈이 아니라고!”

나이젤은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 외쳤다. 애시드와 나이젤은 가장 사이가 좋았었다. 렉서스도 침묵으로 동조했다. 아탄도 동요하여 반문했다.

“그 정보, 신뢰할 수 있는 겁니까?”

클라이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탄은 아연실색했다. 믿기지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애시드와 가장 비슷한 처지였던 드니즈는 비교적 동요가 적었다.

“정말로 ‘그런’거였다면 그로서는 무리였겠지.”

차갑게까지 느껴지는 그의 말에 나이젤은 울컥했다. 그러나 나이젤은 그 분노를 드니즈에게 쏟아내는 대신 클라이드를 향해 외쳤다.

“나를 보내줘! 내가 그의 복수를 하겠어”

“안돼.”

클라이드는 나이젤의 요청을 한마디로 잘라버렸다. 성을 지켜야하는 그에게 그런 일을 맡길 수는 없다. 더욱이 소식에 담겨있는 ‘그런’ 조건이라면 더더욱.

모두가 소란스러운 그 가운데에서 민트는 자신에게 꽂혀있는 한 쌍의 시선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별 수 없군.’

민트는 손을 들며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가지.”

모두의 시선이 민트를 향했다. 민트는 어깨를 으쓱했다.

“별 수 없잖아? 그 ‘조건’에 맞는 건 아마 나뿐일걸?”

처음부터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민트를 주시하고 있던 클라이드는 그녀가 선뜻 나서자 입을 열었다.

“민트를 혼자 보낼 순 없으니 드니즈가 동행한다. 그리고 민트는 다른 동행을 요구할 수 있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고 준비해둔 것이 분명한 클라이드의 말에 민트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클라이드는 아예 처음부터 그녀를 보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니 주저없이 드니즈를 붙였겠지. 그러나 기사(민트는 정확하게는 준기사지만)를 세 명이나 보낼 생각이었다니, 과연 이번 일이 심각하긴 한 모양이다.

‘누가 좋을까?’

나머지 한명을 결정하기 위해 기사들의 면면을 살피던 민트의 시선이 클라이드에게 가 멈추었다. 흔들림 없이 엄격한 그의 눈빛을 보며 민트는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항, 그래서 그런 말을 한 거였나?’

“결정을 내렸나?”

클라이드의 물음에 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는 대답했다.

“나머지 한명은 민츠를 데려가겠어.”

뜻밖의 대답에 기사들은 의외라는 반응이었으나 클라이드는 정확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의도했던 대답이었으리라.

 

그리하여 민트와 드니즈, 그리고 민츠는 임무를 위해 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