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끄덕 삐걱...'

흔들의자에서 나는 소리는 그랬다.

'가르릉...'

격자무늬의 얇은 모포로 덮은 무릎 위에서 잠든 까만 색의 작은 고양이는 고개를 앞발사이에 파묻고 반쯤 졸며 그런 소리를 냈다.

바람은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문득, 멀리서 천둥이 울리는 소리가 나고 새울음과도 같고 바람소리도 같은 것이 길게 이어졌다.

나는 소리가 나는 먼 곳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진주빛 모래밭 너머로 잔잔하게 물결치는 에메랄드의 바다가 펼쳐지고 그 바다에 맞닿은 사파이어의 하늘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그리고 그 사파이어의 하늘에 하얀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높은 곳으로, 높은 곳으로 멀어져가는 진홍의 불길이 보였다.

나는 한참이나 그 불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미 그 불길이 저 사파이어의 하늘을 넘어 작아지고 작아져서 안보이게 되고 난 뒤에도 시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던 내가 시선을 겨우 보이지 않는 불길에서 떼어낸 것은 무릎에 가볍고 서늘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슈레딩거?"

나는 시선을 내려 어느새 구겨진 자국만 남고 비어버린 모포를 보고는 고양이를 불렀다. 어디선가 야옹 하는 작은 울음이 들린 것도 같았지만 고양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다 그런거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다시 흔들의자에 몸을 깊이 묻었다. 하지만 나는 쉴 수 없었다.

"선생님! 선생님!"

누군가가 방갈로의 반대쪽 문을 열고 달려오는 소리가 소란스럽더니 이내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가 흔들의자에 몸을 파묻고 있는 바다쪽의 테라스로 하얀 그림자가 뛰어들어왔다.

"선생님, 로케트에요! 로케트가 올라가는 거 보셨어요?"

"물론이지, 봤단다. 그러니 이제 의자를 흔드는 것 좀 그만둬주지 않겠니, 시에나?"

나는 고개를 돌려 뒤에서 흔들의자를 마구 흔들고있는 금발머리의 소녀에게 말했다. 파란 눈동자엔 장난기 가득했고 방금까지 수영을 하다온 것인지 목덜미를 간신히 덮은 짧은 금발머리는 잔뜩 젖어 있었다.

"하지만 로케트란 말이에요!"

소녀는 멈추기는 고사하고 두손으로 흔들의자의 등판을 잡고 온몸으로 마구흔들며 소리쳤다. 말만한 처자가 비키니를 입고 그런 장난을 하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서구인 답게 발육이 빨라서 우리나라였다면 이십대라고 해도 믿었을 몸매지만 소녀가 사실 올해가 지나야지만 중학교를 졸업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만 그만. 시에나, 나사(NASA)의 우주기지가 건너편 섬에 있다는 건 너도 알고 있잖니?"

나는 마구 흔들리는 흔들의자에서 타이밍을 맞추어 몸을 내렸다.

"그래도 로케트잖아요! 대단하지 않나요?"

소녀는 흔들의자를 흔드느라 힘을 쓴 탓인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그래 그래, 대단하구나."

맞장구를 쳐주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을 기세라 고개를 저으면서도 나는 그렇다고 해주었다.

"그렇죠? 그런데 캣시는 어디 갔어요?"

소녀는 무언가 이기기라도 한 것처럼 의기양양한 태도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 모습이 어느새 도망간 까만 고양이와 닮아있었다.

"캣시가 아니라 슈레딩거."

"캣시! 캣시, 이리 오련!"

나는 소녀의 말을 정정해주었지만 소녀는 듣지도 않고 빙글 돌아서서 방갈로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리저리 고양이를 부르며 부산하게 움직이더니 다시 테라스로 나왔다.

"캣시 없어요?"

"그래. 네가 오는 줄 알고 미리 도망친 모양이다."

"그럴리가요! 캣시가 저를 얼마나 좋아하는 데요. 저하고 수영을 몇 번이나 같이 했다고요."

아마 그게 고양이가 소녀를 피해 도망치게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 같지만.

"치이..."

소녀는 금새 뾰로통해져서는 방금까지 자신이 마구 흔들던 흔들의자에 걸터앉았다. 소녀의 하얀 엉덩이 밑에 깔린 얇은 모포가 금새 젖어들었다. 빨랫감이 늘겠군. 돈을 조금 쓰더라도 식모를 하나 둘 것을 그랬나. 식사야 대충 나가서 사먹거나 뭐라도 사다놓고 먹긴 하지만 아무래도 빨래가 문제였다.

"선생님?"

"응?"

나는 잡다한 생각을 멈추고 다시 소녀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저 내일 돌아가요. 다음 주에 새 학기거든요."

"벌써 그렇게 ㄷㅚㅆ나..."

나는 수염이 꺼끌꺼끌한 턱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보며 대답했다.

"다음 방학에도 놀러 올 거에요! 그때도 여기 있을 거죠?"

소녀는 서운한 눈을 하고 나를 올려다 보며 물었다. 나는 그냥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사실이었으므로.

"선생님은 이상해요. 우리 아빠보다도 젊은데 항상 할아버지 같아요. 선생님은 왜 이런데서 사는 거에요?"

그 말이 맞다. 대개 이곳은 잠시 휴가를 즐기러오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인생의 말년을 평온히 맞으려는 노인들 뿐이었으니까.

"시에나, 그건 네 말이 맞단다."

"네?"

"내가 젊었을 때, 그래도 지금 네 나이보다는 많았지만. 우리 나라에는 큰 전쟁이 있었단다. 아마 그때 나는 내 나이보다도 늙어버린 거란다."

"다른 나라에서 쳐들어 온 건가요?"

파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뜨고 물어보는 소녀에게 나는 고개를 저어보였다.

"아니... 차라리 그랬으면 조금 덜 힘들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우리는 같은 나라 같은 민족 사람들끼리 싸워야 했단다."

"왜요?"

"글쎄..."

나는 그 물음에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왜요?"

나는 거듭되는 소녀의 물음을 들으며 그때를 떠올렸다. 어제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너무나 아득해져서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잘 모르겠구나."

"치이..."

소녀는 무엇을 생각하고 기대했던 건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일어섰다.

"그럼 저 갈게요. 내일 가기 전에 한 번 또 올 거에요. 진짜 어디 안 가고 있는 거죠? 내일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그래. 그러려무나"

나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내가 어디로 갈 수는 없을 테니까. 내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을 지금은 아득해진 어제에 모두 놓아두고 온 탓에, 그래서 지금 여기 있는 것은 빈 껍질인 탓에 나는 어디로 갈 수 없을 테니까.

소녀는 몇 걸음 옮기고 돌아보고 하기를 몇 번이나 하다가 저만치서 손을 크게 몇 번 휘둘더니 뛰어가 버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왠지 미안해졌다.

"야옹..."

소녀가 간 것을 알고 나타난 것인지 고양이가 슬그머니 나타나서 발목에 몸을 부비며 작게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