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가락, 가는 손가락과 굵은 손가락이 서로를 향해 다가간다. 조심스레 뻗치는 달팽이의 뿔처럼 살그머니 다가간다. 하나, 섬세한 손톱의 뿌리 쪽에는 며칠이 지나서 벗겨져가는 짙은 색 매니큐어의 자국이 남아있다. 하나, 굵은 손가락의 마디는 나무옹이처럼 불거져있다. 하나와 하나, 그 손가락들의 끝이 살짝 닿았다가 놀란 것처럼 떨어지더니 뱀들의 싸움처럼 서로를 뒤섞고 탐한다.

  손가락들의 이끌림을 따라 손이 손을 덮고 깍지를 끼고 손마디를 훑고 손바닥을 간질인다. 부드러움과 열기와 거칠고 단단함이 서로를 희롱한다.

  남자의 손, 손등에는 오래된 희미한 상처들이 밤하늘의 잔별처럼 흩어져있다. 햇볕에 살짝 그을린 피부는 그 밑으로 잿빛이 드리운 것처럼 보이고 굵은 힘줄이 손마디의 움직임을 따라 요동한다.

  여자의 손, 그 손등은 오히려 남자보다도 짙은 갈색이었다. 역시 햇볕에 탄 것이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태어나서부터, 아니, 그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피를 통해 이어져온 강한 햇살에 의한 것이었다.

  한참이나 포개어진 채로 깍지를 끼고 서로를 느끼던 손들이 살며시 벌어진다. 손바닥과 손등이 떠나고 굳게 겹쳐져 접혔던 손마디가 펼쳐지고 손가락들이 손가락들의 사이를 스치며 멀어진다. 아쉽다는 듯이 그 끝의 떨어짐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결국은 떨어지고야 만다.

  "크ㄴㅛㅁ 쓰롤란 네아, 머팜."

  나는 익숙하지 않은 그녀의 말을 조심스레 발음한다.

  "아이 러브 유."

  나직이 말하는 그녀의 발음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그 억양은 너무나 달콤하다. 치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평하지 못하다. 내가 그녀의 말을 못하는 것처럼 그녀 역시 영어를 못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그녀는 오직 전 세계의 절반도 더 알고 있을 몇 마디의 영어만으로 나를 사로잡고 무수한 그녀의 말로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나는 돌아서서 걷는 그녀를 본다. 조금 떨어져서 앞자리에 앉아있는 현지인 사무원은 우리가 작은 목소리로 말한 탓인지 아니면 듣고도 모르는 척한 것인지 서류철에 고개를 묻고 꼼작도 하지 않는다. 나는 사무원의 등 너머로 그녀가 걸어가고 문 앞에서 살짝 돌아서는 것을 본다.

  인도계의 피가 섞인 것으로 보이는 선명한 얼굴선과 커다란 눈이 흑백영화로 봤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한다. 그 얼굴이 문틈 사이로 가려지다가 멈추더니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빠져들 것 같은 강렬한 눈 빛. 입술이 작게 두 번 소리 없이 움직인다.

  ‘바이바이.’ 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살짝 웃어본다. 문틈이 그녀의 얼굴을 밀어냈다.

  나는 닫힌 철문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빈 손마디를 문질러 본다. 분명 나의 손인데도 껄끄럽고 어색하기만 하다.

>

  한때 잘나가지 않았던 사람이 없는 것처럼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나 영광의 그 시절은 있을 것이다. 이곳 캄보디아 역시 먼 과거에는 인근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을 갖고 있었다. 지금도 그런 것을 따지는지는 모르지만 세계 칠대불가사의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 중 하나인 앙코르와트가 바로 캄보디아의 영광, 위대한 크메르 제국이 남긴 흔적인 것이다. 불행히도 그 영광은 너무나 오래전의 것이고 이들 캄보디아인은 긴 식민통치와 킬링필드로 유명한 내전을 겪으면서 영광의 다른 흔적들은 대부분 잃어버리고 말았다.

  바로 옆에는 유일하게 세계경찰 미국을 정면대결에서 물러나게한 베트남과 단 한 번도 타국의 침략에 굴복하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삼는 태국이 있고 위로는 동남아 제일의 불교국가라는 라오스가 있다. 그에 비해 인구 겨우 천오백만의 이 나라는 이렇다 할 자원도 없고 대부분의 전기를 베트남에서 수입해서 쓰며 문자는 백오십 자 정도나 돼서 쓸데없이 복잡하기만 하고 숫자체계는 오진법이라서 조금만 자리수가 큰 계산도 곤란해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누군가의 말처럼 몸도 마음도 빈한하기 짝이 없는 이 나라, 캄보디아에 내가 온 것은 바로 그 빈한을 등쳐먹기 위함이었다. 잔혹하고 비열하게 들리는가? 그러나 실패한 작가에게 남은 선택은 그리 많지 않은 법이다.

  비록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고 자부하고 스스로의 글쓰기에 나름 자신을 갖고 있다고 해도 결국 다수의 독자나 소수의 평자를 만족시키지 못한 것은 실패일 따름이었다. 그리고 실패한 작가에게 주어지는 것은 재가 되어버린 열정과 가벼운 지갑, 좁아진 취업문 정도인 것이다. 그러니 내게 비록 열네시간의 평균노동시간과 대부분의 휴일을 반납하고 받는 박봉이라고 해도 현지의 물가와 생활수준을 고려하면 거액인 월급을 주는 캄보디아의 공장관리직은 제법 만족스런 타협안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실패한 작가들이 그렇게 스스로를 세상에 묻어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

  “미스터 서, 나는 당신에게 보여줄 것이 있습니다.”

  필리핀사람인 품질검사원 리키가 사무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풍성한 콧수염과 땅딸하면서 다부진 체구가 유명한 모 게임의 이탈리아 배관공 아저씨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그가 유쾌한 성격에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당신은 당신의 근로자를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게으르고 멍청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일 때문에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불평을 해야만 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의 밝은 성격과 열정과 충실함이 그 불평을 지나치게 길어지게 만들곤 했다.

  “왓츠 더 프라블럼, 리키?”

  (What's the problem, Ricky?)

  “미스터 서. 당신의 근로자들이 브라컵을 자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XL사이즈의 브라컵을 잘라 XS탑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리키, 아이 언더스탠드 왓 유 민. 벗 나우 대이 메이크 저스트 스톡.”

  (Ricky, I understand what you mean. but now they make just stock.)

  “물론 저도 그것들이 재고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하던 그대로 당신의 새로운 오더 스타일에도 할 것입니다.”

  “슈어. 아이 윌 워닝 앤드 인폼 투 댐. 뉴 스타일 이즈 디퍼런트 위드 스톡. 앤드 앳 댓 타임 위 윌 기브 올 사이즈 브라 컵. 벗 나우 위 돈 해브 섬 사이즈 위드 디스 스톡. 쏘 대이 니드 투 컷 더 브라컵.”

  (Sure, I will warning and inform to them. New style is different with stock. and at that time we will give all size bra-cup. but now we don't have some size with this stock.)

  "오, 미스터 서. 나는 당신이 물론 그들에게 잘 알려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충분히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게으르고 멍청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슈어, 아 윌 리멤버.”

  (Sure, I will remember.)

  리키는 그제야 찌푸렸던 인상을 펴고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그리고 몇 마디 시시한 잡담을 던졌다. 휴일엔 뭐 했느냐 거나 현지인 애인을 만들 생각은 없냐는 따위의 이야기였다.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다가 문득 궁금한 것을 물었다.

  내가 이곳 캄보디아에 온 후로 많이 보았던, 여러 공장이나 규모가 큰 상점 등에서 건물의 한쪽이나 마당의 한쪽에 만들어져 있던 작은 도교식 사당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길에서 자주 보이는 한자 간판들에 대한 것이었다. 이처럼 많은 문화적 영향을 끼친 화교들이 왜 정작 길에서는 그리 보이지 않는 것인가 하고 리키에게 물어보았다. 한국에 있었을 때 듣기로 동남아는 화교의 영향력과 지배력이 강하다고 했는데 말이다.

  “오, 미스터 서. 분명 전에 이곳 캄보디아에는 많은 중국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공장과 상점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대부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자리에 한국인들이 들어왔습니다. 지금 당신의 공장도 그렇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알 수 있었다. 많은 화교들이 중국의 시장개방에 맞추어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갔거나 혹은 한국인들의 해외진출에 떠밀려 밀려났다는 것을. 그리고 프랑스의 식민지 통치를 마치고 화교의 지배를 받다가 이번에는 한국인들의 진출에 삼켜지는 캄보디아를 알 수 있었다.

  “웰……. 벗 이프 위 코리안 낫 컴 히어. 메이비 아더 컨츄리 컴즈 히어. 아이 노우 잇츠 얼모스트 이코노미컬 콜로니즘. 벗 노 웨이. 얼웨이즈 스트롱 컨츄리 원츠 대어 오운 마켓 앤드 콜로니. 디스 해픈드 낫 온리 캄보디아 벗 올 오버 더 월드.”

  (Well……. but if we korean not come here. maybe other country comes here. I know it's almost economical colony. but no way. always strong country wants their own market and colony. this happened not only Cambodia but all over the world.)

  내 말을 들은 리키는 씁쓸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하긴 그 역시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필리핀인들은 캄보디아인의 수배에서 열배의 월급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 자신은 그런 필리핀인의 몇 배의 월급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이곳 말로 정쩍이라고 하는 노르스름한 도마뱀 한 마리가 벽 위를 빠르게 달려 에어콘과 벽의 틈새로 숨어버렸다.

>

  수없이 날아드는 각종 메일과 스카이프 대화, 그것을 확인하고 응답하기 위해 수 없이 파일과 서류철을 뒤지는 것을 반복. 엉뚱하게도 캄보디아는 불안한 전기사정에 걸맞지 않게 각종 무선인프라와 인터넷이 발달한 신기한 통신환경을 갖고 있었다. 엉망이기 짝이 없는 교통체계와 지루하고 영양가 없는 현지방송처럼 부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근대화의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팽개치듯 일을 잠시 정리해두고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열시를 살짝 넘어있었다. 그때에 시계가 갑작스레 가려졌다. 앞에 앉아있던 현지인 사무원이 일어난 탓이다. 사무원은 주섬주섬 몇 가지 서류를 챙겨들고 창고 열쇠를 챙겨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정말로 무언가의 재고를 확인하려는 것인지 눈치를 봐서 자리를 비켜주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머팜, 그녀가 작은 공책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녀의 일은 매시간 각 봉제라인의 생산량을 파악해서 현황판에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내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그대로 현황판으로 걸어가서 공책을 펴들고 두툼한 마카 펜으로 숫자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나는 군데군데 얼룩이 남은 하얀 현황판에 새겨지는 숫자를 살핀다.

  1, 2라인은 생산을 시작한지 제법 지난 덕분에 시간당 200장 이상이 무리 없이 나오고 있었다. 3, 4라인은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그래도 무난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5라인은 간신히 두 자리 숫자가 나오는 정도였다. 밤새 마사지걸들과 외박을 하고 아직도 들어오지 않고 있지만, 부장이 공장에 돌아오면 학을 뗄 것이 분명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고는 시선을 옮겼다. 검은 숫자를 만들어내는 마카 펜과 그 마카 펜을 잡은 갈색의 섬세한 손과 손 아래로 뻗은 갸름한 손목. 그리고 흘러내려서 팔뚝을 살짝 드러낸 조잡스런 염색의 라운드 셔츠 소매와 라운드 주위로 드러난 뒷목. 군데군데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검은 머리는 뒷머리 위에서 붉은 끈으로 질끈 묶여 수탁의 꽁지처럼 풍성하게 흩어져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녀의 뒤로 다가갔다. 분명 내가 일어난 것을 알았을 텐데도 그녀는 기록을 마친 현황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크ㄴㅛㅁ 짬 네악 마오, 머팜.”

  나는 알고 있는 몇 마디의 말을 최대한 조합해보며 그녀의 어깨에 두 손을 얹었다. 투박한 손에 쏙 들어오는 가녀린 어깨는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음식과 과다한 노동이 만들어낸 것일 테지만 그런 빈한을 넘어선 무엇이 있었다. 쓰다듬을 때의 부드러운 굴곡과 살짝 쥐었을 때의 가볍게 눌리면서도 탄탄하게 밀어내는 육체에는 그것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나는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는다.

  “아이 미스 유?”

  그런대로 말이 통한 것일까? 그녀는 속삭이듯이 물어보듯이 대답하고는 내 머리 위로 자신의 머리를 기울인다. 나는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문지르듯이 가볍게 키스하고 목선에 키스하고 턱선에 키스하고 눈 옆에 키스한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잡은 손에 좀 더 힘을 주고 그녀를 내 안으로 끌어당긴다.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 바로 얼마 앞으로 온다.

  가볍게 눈웃음을 짓는 그녀의 커다란 눈이 바로 내 눈 앞에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시선을 살짝 돌려 그녀의 눈썹을 본다. 가늘게 정리한 긴 눈썹이 부드럽게 쓴 초서체의 먹선처럼 보였다. 그녀의 가벼운 호흡이 뺨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대로 그녀의 얼굴 위로 내 얼굴을 포갠다. 뒤에서 앞으로, 아래에서 위로, 비스듬히.

  하지만 그녀는 살짝 허리를 기울이는 것만으로 너무나 쉽게 내게서 멀어진다. 그리고 몇 발짝 걸음을 옮기며 놀리듯이 우우하는 소리를 내고는 나를 향해 환히 웃어 보인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런 그녀를 바라본다. 아마 누가 보았다면 강제로 젖을 뗐을 때의 아이나 늦게 온 주인이 안아주지 않았을 때의 강아지를 떠올렸으리라.

  그런 내가 딱해 보인 것일까. 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사무실 문의 문고리를 잡은 채로 멈춰 서서는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나는 얼굴에 떠오르는 웃음을 지우지 못한 채로 그녀에게 다시 다가간다. 그녀는 지그시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인다.

  “스나에하 머팜!”

  사랑스러운 머팜, 나는 참았던 숨을 뱉듯이 말하고는 그녀의 손을 잡아끈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겹친다.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격렬함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손은 우리의 입술보다 격렬하게 서로를 탐했다. 마주 잡은 채로 깍지를 끼고 상대방의 손바닥을 문지르고 좌우로 부볐다. 좌우에서 다섯과 다섯, 다섯과 다섯의 손가락들이 꿈틀댔다.

  나는 그녀의 말을 모른다. 그녀는 나의 말을 모른다. 나는 작가 출신의 공장 관리직 고용인이고 그녀는 제삼세계국가의 하층 노동자다. 나의 월급은 이천 불 정도고 그녀의 월급은 백 불 정도다. 나는 고아고 그녀는 쥐떼 같은 대가족의 일원이다. 나는 음울하고 그녀는 활발하다. 나는 에어컨이 켜진 사무실에서도 반팔을 입고 있고 그녀는 더운 공장 안에서도 긴 소매의 라운드 셔츠를 입고 있다. 나는 늙은 총각이고 그녀는 젊은 유부녀다.

  그러나 때로는 해와 달이 함께 뜨기도 하고 바다가 육지가 되기도 하는 일이 현실에서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나와 그녀처럼.

>

  사무원이 돌아왔을 때 나는 자리에 앉아 온갖 영수증을 뒤적이고 있었다. 마치 계속 그랬던 것처럼. 사무원은 슬쩍 내게 눈을 주었다가 등을 보이고 앉았다.

  “선생님?”

  잠시 뒤에 사무원이 등 너머로 다소 늘어지는 영어를 던졌다.

  “와이?”

  (why?)

  나는 영수증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남편이 있습니다.”

  “……아이 노우.”

  (……I know.)

  사무원은 잠시 말을 멈췄다. 하긴 그가 나와 그녀의 관계를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됐다. 그녀의 말을 영어로 나의 말을 캄보디아의 말인 크메르어로 그가 통역해준 것이 몇 번이었는데.

  “사람들은 그녀가 싸구려라고 말합니다.”

  “웰……. 아이 돈 어그리 벗 아이 언더스탠드 왓 유민.”

  (Well……. I don't agree but I understand what you mean.)

  "선생님이 원하신다면 저는 잘 교육받은 다른 여자를 소개해줄 수 있습니다.“

  “아이 돈 원트. 노 니드.”

  (I don't want. no need)

  사무원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그의 짙은 갈색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그녀의 남편은 우리 공장의 경비입니다. 그는 선생님을 미워합니다.”

  “아이 노우. 아이 언더스탠드 힘.”

  (I know. I understand him.")

  "선생님은 친절하고 잘 교육받았고 잘 생겼습니다. 왜 그녀를 사랑하십니까? 저는 선생님과 그녀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나는 그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사무원은 영어교사 출신에 현직 경찰이기도 했다. 공무원의 이중취업이 보편적인 이 나라의 관습 덕분이었다. 그는 이 나라에서는 비교적 상류층이고 지식인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내 생각을 설명할 수 없었고 설명한들 그가 내 생각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나란 사람은 한국에서도 내 생각과 마음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지 못한 실패한 작가가 아니던가.

  미래를 걱정하다니? 애초에 미래라는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좌절하여 침잠하는 빈한한 작가와 이제야 산업화를 시작하는 나라의 빈한한 여인에게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과거로부터 돌아선 자들에게서 미래마저 사라지고 무엇이 남아있단 말인가.

  아마도 내가 사무원인 그에게 설명하지 못한 것은 그런 말이었을 것이다.

  열기를 막기 위해 높이 올려지은 천정 한 귀퉁이에 허물어진 솜사탕 같은 거미줄이 흐늘거렸다. 이 나라의 거미들은 한국에서 보던 것 같은 정방형의 거미줄을 짓지 않는다.

>

  아직도 불그스름하게 눈가가 취기에 물들어 있는 주임은 오후부터 공장에 돌아와서 온갖 지시로 사람을 들들 볶았다. 물론 그는 나이만큼이나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그가 하는 지시의 대부분은 타당한 것이었다. 다만 그는 현장 출신들이 대개 그렇듯 말이 거칠었고 일의 진행에 두서가 없었다. 결국 나는 사소한 청소에서부터 생산계획의 변경과 자재의 발주까지 오만가지 일을 그에게 지시받아 처리하고는 녹초가 되어버렸다.

  간신히 숨을 돌리고는 공장 마당으로 담배를 한 대 태우고자 나갔을 때였다. 살짝 기울었을 뿐 아직 햇빛의 열기는 강렬했지만 한국의 여름과는 달리 습도가 적어서 그늘에 있으면 그럭저럭 버틸 만 했다.

  “선생님.”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는데 누군가가 캄보디아식의 늘어지는 영어를 던져왔다. 고개를 돌리니 경비복을 입은 남자가 눈이 붉어진 채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뒤에는 머팜이 두려운 얼굴로 그의 경비복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아! 이것이 미래인가.

  “크ㄴㅛㅁ 쁘다이 머팜. 꼬레 스라이 미은 쁘다이 쭈웁 쏭사 엇빤야. 크마에 미빤야!”

  그는 흥분한 어조로 내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 흥분한 말투의 카랑카랑함은 어딘가 중국의 경극을 떠올리게 하는 희극적인 것이었다.

  한참 일을 할 시간인 탓인지 열기 탓인지 공장의 마당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희미한 기계음들만 그와 그의 뒤의 머팜과 나의 사이로 흘러갔다.

  “캔 유 스피크 잉슬리쉬?”

  (Can you speak English?)

  나는 가만히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그 순간 그의 얼굴이 확 굳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네, 네. 선생님. 저는 영어를 할 수 있습니다. 조, 조금.”

  이 친구야 나도 사실은 영어를 잘 못 해.

  “오케이. 아이 언더스탠드 왓 유 민. 앤드 나우, 아이 돈 원 파이트 위드 유. 유 캔 컴 투 미 왠 워킹 피니슁. 앳 댄 타임 위 캔 토크.”

  (Okay. I understand what you mean. and now, I don't want fight with you. you can come to me when working finishing. at that time we can talk.)

  글쎄, 얼마나 알아들은 것인지 만 것인지 그는 붉은 눈만 끔뻑거렸다.

  “언더스탠드?”

  (Understand?)

  “네, 네. 선생님.”

  내가 조금 강하게 묻자 그는 얼떨결에 공손한 태도로 대답을 한다.

  “오케이. 댄 고 앤 두 유어 잡. 아이 민 떠으.”

  (Okay. than go and do your job. I mean 떠으.“

  그는 그의 말로 말한 가라는 말만은 분명히 이해했는지 주춤주춤 물러서서 공장입구의 경비실로 어색한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라가던 머팜이 고개를 돌려 불안한 눈길을 내게 던졌다. 남편의 옷깃을 조심스레 잡고 있는 손과 그 커다란 눈이 내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래서 나는 힘없이 웃어보였다.

  아! 이것이 현실이 된 미래인가. 그럼 이것은 곧 과거가 된 현실이 되는 것인가. 그럼 대체 과거도 현실도 미래도 우리를 스쳐 사라질 뿐 대체 무엇이 우리 곁에 있고 우리를 있게 하는가.

>

  다음날 아침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새벽에 일어나 공장으로 나가 닫힌 철문을 열었다. 잠시 현장 라인을 둘러보고 선반에 쌓인 재단된 원단들을 확인하는 사이 일찍이 나온 여공들이 하나 둘 맨발로 공장 안으로 들어왔다.

  공장의 지붕에 내려쬐고 있을 아침 햇살도 한낮의 그것과 별다르지 않은데다가 낮게 설치한 형광등들까지 가세해 금새 공장 안을 달궜다. 나는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을 손가락으로 문지르고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밤새 어디로 들어온 것인지 수 마리의 파리와 모기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손으로 휘저어 쫓아냈다. 윙하는 굉음이 들렸다. 베트남인 기계 기사들이 환기용의 대형 팬들을 돌리는 소리였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는데 사무실문이 열렸다.

  “쏨또, 미스터 서.”

  흐려진 얼굴로 머팜이 들어왔다. 나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쁘다이 컹 찌랑찌랑, 크ㄴㅛㅁ 욤 찌랑찌랑. 쏨또, 미스터 서 컹?”

  그녀의 가는 눈썹이 젖은 수양버들처럼 한껏 쳐져있었다. 본래부터 나는 화가 나지 않았거니와 그 표정을 보고 어떻게 화를 낼 수 있단 말인가?

  “크ㄴㅛㅁ 엇 컹. 네아 욤 하으이 크ㄴㅛㅁ 츠으.”

  나는 손을 들어 남편이 화를 내서 울었었다고 하는 그녀의 눈가를 훑어낸다. 그녀는 내 손가락에 볼을 부비다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미스터 서 츠으?”

  어디가 아픈지 왜 아픈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 내 가슴에 이끈다.

  “츠으.”

  내가 다시 말하자 그녀는 이해했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대로 손을 떼지 않고 가볍게 내 가슴사이를 손가락으로 훑어낸다. 옷을 내리누르며 가슴골사이로 지나는 그녀의 손가락이 느껴졌다. 나는 가슴사이를 지나 멈췄다가 떨어지려고 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은 채로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엇 반. 쁘다이 컹”

  그녀는 멈춰선 채로 고개를 흔들었다.

  “엇반야. 노 프라블럼. 아이 돈 캐어. 상관 없어. 제기랄.”

  나는 엉망으로 중얼거리면서 그녀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았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그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다시 그녀의 입술에 입술을 포갰다. 평소보다 조금 격렬하게.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부비고 그녀의 입술을 깨물고 빨아들였다. 그녀의 숨소리가 쌔근쌔근하며 거칠어지는 것이 들렸다.

  “크ㄴㅛㅁ 쓰롤란 네아, 머팜.”

  나는 그녀에게서 입술을 떼며 힘주어 말했다. 그녀는 가볍게 눈을 감고 키스의 여운을 느끼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눈 안에 내가 있었고 그 나의 눈 안에 그녀가 있고 또 서로가 서로의 안에 있었다.

  “아이 러브 유, 미스터 서.”

  그녀는 환히 웃으며 어깨를 잡고 있던 내 손을 그녀의 손으로 감쌌다. 나는 그녀와 함께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몇몇 여공들이 봉재를 마친 옷들을 한 아름씩 안아 나르다가 우리를 보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손을 잡은 채로 걸음을 옮겼다. 손 안에서 그녀의 손이 불안한듯 빠져나가려다가 다시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를 이끌어 공장의 뒷문으로 나갔다. 며칠 전의 큰 비에 쓰러진 담장이 보였다. 무너진 담장 너머로는 조그마하게 남은 열대 우림의 흔적들이 이어져있었다. 한 마리 크고 검은 정쩍이 담장을 넘어 사라졌다.

  나는 그녀와 함께 무너진 담장들 사이를 지나 밖으로 나갔다. 이름 모를 열대 나무들 사이, 잡초와 진창으로 덮인 길 아닌 길을 걸어갔다. 나의 왼손은 그녀의 허리에 그녀의 오른손은 나의 허리에 걸려있었다. 나의 오른손은 허리에 걸린 그녀의 왼손을 감싸 쥐었고 그녀의 왼손은 그녀의 허리에 걸린 나의 오른손을 감싸 쥐었다. 서로가 서로의 몸에 바싹 닿아서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서로의 속으로 파고들 것 같았다.

  이름 모를 나무 사이로 나의 말과 그녀의 말이 뒤섞였다. 떨어져 깨어진 야자열매 속으로 개미들이 줄을 이루었고 나의 몸과 그녀의 몸이 뒤섞였다. 공장은 이미 멀어져 보이지 않았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손들이 사방에서 춤을 추었다. 과거도 현실도 미래도 뭉뚱그려져 희미해졌다. 비를 부른다는 바람을 따라 웃음소리가 흩어졌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